[이건행 칼럼] 김장하 어른을 아시나요?

2023.01.19 06:00:00 13면

 

 

지역 방송(경남MBC)에서 만든 다큐 '어른 김장하'가 SNS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60여 년 이상 경주 최 씨 못지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묵묵히 실천해 온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이제 알게 됐다는 것도 한몫했을 터이다. 또한 오랜 세월 지역 언론의 가치를 위해 싸워 온 경남도민일보 출신의 김주완 기자가 100여 명을 인터뷰 하는 등 완성도가 높은 것도 감동을 주는 요인이 아닐까한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명의로 이름을 떨친다. 직원이 20명 가까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직원들의 월급은 다른 한약방에 비해 3배나 많았다. 그의 사회 공헌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다 급기야 현대적 시설의 고교를 설립해 자립시킨 뒤 100억 원이 넘는 학원을 미련 없이 국가에 헌납한다. 지역 언론과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 등 지역 사회 곳곳에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선생은 지원은 하되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자신이 추천한 사람을 고교 교사로 임용하라는 청탁을 무간섭 원칙으로 일언지하에 거절해 온갖 감사를 받았던 것이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이사장인 선생의 뜻에 따라 학교가 투명하게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선생은 행사장에 참석할 경우 매번 주목받는 중앙이 아닌 끝에 앉는다. 연설을 할 때도 상식적인 이야기 몇 마디로 끝낸다. 그의 사회 공헌이 권력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구체적 예이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아 홍보 홍수 시대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더욱이 선생은 좌니 우니 따지지 않는다. 사회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섞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공이데올로기 사회에서 "당신 빨갱이 지?"하는 공격을 자주 받을 수밖에 없다. 선생은 그때마다 "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마라"고 점잖지만 단호하게 응대한다. 선생에게는 좌나 우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어른 김장하'를 보면서 우리가 감동하는 깊은 이유일지 모른다.

 

다큐에서 선생이 돈을 똥으로 표현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그의 핵심적인 철학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성들여 번 돈을 여러 봉투에 담아 놓았다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불쑥 꺼내어 손에 쥐어준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돈은 궁극적으로 자기 것이 아니라는 철학, 똥이 고루 뿌려져야 식물이 잘 자라는 것처럼 돈도 막힘없이 나눠야 사람이 잘 자랄 수 있다는 철학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잊고 산다. 현실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자살률뿐 아니라 노인 자살률도 OECD 국가에서 수위인 실정이다. 31세의 청년이 돈을 목적으로 무고한 택시운전기사를 살해한 것처럼 끔찍한 대형 범죄도 잊을만하면 발생한다. 살인적 양극화와 돈이 신이 돼버린 세상을 외면하고 원인을 파악한다면 연목구어일 것이다.

 

'어른 김장하'는 이런 세상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대사건이다. 소리 없는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닿아야할 세상을 그의 표현대로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하며 온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신이나 영웅을 거부한 그는 진정 우리 시대의 '찐'이다. '찐' 어른!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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