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색] 평양 지하철

2023.02.06 06:00:00 13면

 

 

2002년 평양에서 열린 경제회담에 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 지하철을 처음 타 볼 기회가 있었다. 평양지하철은 동서와 남북 2개 구간에 17개 역의 노선으로 되어 있고, 지하 100-150m 깊이에 만들어져 있으며, 1973년 광복절에 운행을 시작했다. 총연장 길이는 34km이고 당시 내가 타고 내려갔던 에스컬레이터는 길이가 120m 정도였다. 플랫폼은 대리석 돔 형태로 되어 있고 벽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주인공으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중세 유럽의 궁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역구조상 4량 운행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나 당시 내가 탄 차량은 3량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우리의 서울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 구간)이 1974년 광복절에 운행을 시작했으니 평양보다 1년 개통이 늦다. 

 

70년대 초 평양주민의 교통수요가 많아 지하철을 건설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북한의 안내원 H선생에게 건설 경위에 대해 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사실 미군의 핵 공격에 대비한 대피 시설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6·25 조국해방전쟁(6·25 전쟁을 북한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군의 반인류적 행태에 대해서도 늘어놓았다. H선생은 미국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렇기 때문에 6·15 정신(2000년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의 합의 정신)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고 열정적으로 설교했다. 돌이켜 보면 내 초등학교시절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공산당의 만행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의 6·25 전쟁 상흔에 대한 트라우마가 우리보다 훨씬 더 크다는 생각과 자폐적 행태를 보이는 유아적 행동들, 그리고 왜 그토록 핵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나름 이해도 되었었다.


지난해 발악에 가까운 미사일 도발이나 말 폭탄, 그리고 최근의 무인기 침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적개심 표출은 모두가 6·25 전쟁에 뿌리를 둔 공포와 불안, 그리고 미국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특별히 2018년 남한과 미국이 보인 배신행위로부터(북한은 당시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음의 책임을 모두 미국과 한국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적개심과 불안은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북한핵에 불안을 느끼는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서의 핵항모나 F-22 F-35 등 전략무기들의 전개에 대해 극도의 공포심을 갖고 있다. 나아가 오랜 기간 지속되는 대북제재에 북한은 한계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따뜻한 배려와 소통, 그리고 사랑만이 북한을 자폐적 적개심의 노예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이라 확신한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약속(비핵화와 제재해제 그리고 북미수교)을 구체화하는 실행계획을 북한에게 제시한다면 북은 흔쾌히 대화에 응할 것이다. 내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평안해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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