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춥고, 시끄럽고, 더럽고’…제조업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2023.02.06 06:00:00 1면

지자체 허가, ‘컨테이너=주택’…올 겨울 최강 한파에도 난방은 ‘불가’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감기·불면증 달고 살아도 사업장 변경은 ‘불가’
비위생 환경서 생활…기숙사 사용료로 월 18~25만 원 사업주에 ‘지불’

 

경기도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90%가 제조업에 종사한다. 이들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이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는 소음과 추위에 취약하고 비위생적인 곳이 대부분이다. 농축산어업과 달리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주거 대책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경기신문은 제조업 이주노동자의 주거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 대안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고용허가제 사각지대 놓인 제조업 이주노동자 주거 현실

<계속>

 

 

영하 20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가 들이닥친 지난달 말 김포시의 한 중소제조업체. 1년 전 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 호산(가명·30)씨는 공장 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이곳에는 호산 씨를 비롯해 이주노동자 5명, 한국인 3명 등 모두 9명이 거주하고 있다.

 

호산 씨를 따라 공장 안에 마련된 컨테이너 구조 2층 기숙사로 향했다. 눈이 얼어 미끄러운 철제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올라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서는 온기가 느껴지기는커녕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얼음장 같은 냉기로 발이 시렸다.

 

패딩 점퍼로 새어 들어오는 칼바람은 이곳이 밖인지 실내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창문은 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과 종이로 덧대어져 한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할 만큼 어두컴컴했다.

 

호산 씨는 “밤에는 더 춥고, 요즘에는 감기를 달고 산다”면서 “작은 난방 기구가 있지만 화재 위험으로 사장님이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호산 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추위뿐만이 아니다. 그의 방은 소음에도 취약했다. 컨테이너를 간이 벽으로 막아 놓은 탓에 옆방의 기침소리는 물론 기숙사 바로 앞 현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인해 호산 씨는 밤마다 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는 “밤에도 공기압축기 등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10분 간격으로 들려 제대로 잠을 자기 힘들다며”며 “이로 인해 불면증도 생겼다”고 토로했다. 

 

 

주방, 화장실 등 다른 시설도 열악한 것은 마찬가지다. 기숙사 1층 구석에 마련된 주방은 벽과 바닥, 천장 등에 곰팡이가 가득했고, 수돗물과 가스를 사용할 수 없어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기숙사와 200여m 떨어진 화장실과 세면공간은 9명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호산 씨는 “세면공간은 따뜻한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도 출퇴근 시간에 이용하려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호산 씨처럼 공장 내 설치된 컨테이너 기숙사에 거주하는 제조업 종사 이주노동자의 근로계약서에는 숙박시설 제공 형태가 대부분 ‘주택’으로 표기돼 있다.

 

이들은 주택이 아닌 소음과 추위, 비위생적 환경의 가설건축물에 생활하며 매달 주거비로 18~25만 원 상당을 사업주에게 지불한다.

 

 

2020년 12월 포천시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거주하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사망을 계기로 고용노동부는 이듬해 1월 초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안을 내놨다.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신규 고용허가를 불허하고, 건축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임시숙소)을 받은 경우만 허가한다는 내용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숙소 문제로 사업장 변경을 원할 경우 사업장 변경 허용 횟수(3년 3회, 1년10개월 2회)에 포함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농지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기숙사는 농지법 위반에 해당돼 사업장 변경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숙소 문제로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벗어나려면 사업주의 허가가 필요한데 인력난이 부족한 중소제조업의 특성상 사업주가 허가를 내줄리 만무하다.

 

업체는 기숙사의 사전 정보 제공을 통해 시설내용 외에 사진, 영상 등 시각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지만 규정을 지키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

 

때문에 참다못한 일부 이주노동자들이 지역 고용센터에 기숙사 내·외부 사진 등을 찍어 직권조사와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는 진정서는 내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섹알마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농장 비닐하우스 기숙사는 농지법 위반으로 사업장 변경이 조금 수월해졌지만 공장 내 컨테이너 기숙사는 여전히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자체 고용센터에 컨테이너 기숙사를 신고해도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며 “지자체에서 축조신고는 대부분 쉽게 내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장 변경을 하려해도 사업주 허가가 필요한데 기숙사 문제 등의 이유로는 사실상 사업장 변경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

김혜진 기자 trust@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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