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형의 생활여행] 물의 여행

2023.03.03 06:00:00 13면

 

 

물은 흐른다.

마땅히 그러하듯. 앞으로, 앞으로.

여린 새싹의 뿌리 곁에서 초록 수풀 사이로, 겹겹이 쌓인 낙엽 틈에서 얼어붙은 강의 밑바닥으로. 어떤 날은 세상 곳곳을 유람하고 어떤 날은 무리 지어 어울리며.

 

물은 흐른다.

흐르는 물은 모든 생명의 휴식이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기 전부터 물이 있는 곳은 곧 쉬어가는 곳이었다. 한 지역에 대한 유랑을 마치고 새로운 길에 오를 준비를 하는 곳도, 지친 몸을 달래며 휴식을 취하는 곳도 흐르는 물의 곁이었다.

섬 자체가 산인 제주는 물이 귀한 곳이었다. 지금도 제주의 강은 모두 건천이다. 현무암질 토양은 물을 담을 수 없어 큰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제주의 하천은 늘 비어 있다. 제주엔 지표수가 부족했지만 지하수가 풍부했고 제주의 물은 특정한 지역, 주로 해안가에서 땅 위로 솟구쳐 올랐다. 지하 깊숙이 들어간 물을 길어내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물허벅을 지고 십 리를 걸어 해안가로 가야 물을 뜰 수 있었다. 땅속이나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라는 뜻의 ‘난물’, 살아 숨 쉬는 물이라는 뜻의 제주어 ‘산물’은 ‘용천수’라는 말보다 물의 생명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1980년대까지 상수도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제주에서 흐르는 물은 생명줄이자 안정이었다. 50만 년 전에 생성된 물을 지하 420m에서 길어와 전 국민이 편의점에서 사마실 수 있게 된 지금도 물이 흐르는 곳은 제주의 유명한 관광지로서 현대인들의 휴식처다. 절경이라 이름난 용연계곡과 비경으로 유명한 쇠소깍에는 늘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제주 3대 폭포인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정방폭포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과 단체관광객들에게도 필수 코스다. 땅 깊은 곳에서 샘솟은 지하수가 자연이 손수 깎아낸 검은 돌 사이로 영롱한 빛을 내며 흐르는 풍경은 피로에 젖은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갈증에 허덕일 때 물을 간절히 찾는 것과 같다. 물이 흐르는 곳에서 삶의 유랑에 지친 이들은 휴식을 취하고 생명력을 회복한다.

 

물은 흐른다.

떨어지고, 구르고, 가라앉고, 곤두박질치며, 튀기고, 일어나고, 솟아올라, 흐른다.

흐르는 물은 바다로 가지만 바다에 이르는 길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물은 고운 색을 내보이며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고, 어떤 물은 23m의 해안절벽에서 떨어지며 순식간에 바다가 된다. 또 어떤 물은 오랜 시간 땅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방식으로 흐른다. 숱한 골짜기를 지나고 어둠을 견디며 길이 없는 곳에서도 당연한 이치인 듯, 흐르고 흐르며 다른 생명을 품어준다.

 

물이 흐른다.

흐르는 동안 더 맑고 귀해질 물의 여행이 너무 고단하지 않기를, 저마다의 여행을 통해 넘치는 생명력을 품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자연형 여행작가

 

 

자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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