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보약] 봄을 감각하다

2023.04.26 06:00:00 13면

 

봄에는 매력적인 냄새가 있다. 견공에 비할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보다는 후각이 발달한 나는 봄을 냄새로도 좋아한다. 여유로운 휴일 공원을 산책할 때 온몸의 감각을 열고 봄 내음을 만끽한다. 가슴을 열고 숨을 잔뜩 들이켠다. 아, 좋다.기억 속 봄의 내음이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좋았다. 이제껏 계속 좋아한 그 내음, 에너지를 언어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촘촘히 느껴본다. 단어를 떠올려 본다. 시원하다. 상쾌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들이켜면 미소가 지어진다. 신선하고 살짝 달콤하다. 코로 들어오는 바람이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하다.

 

동북아시아 철학의 한 축을 차지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론에서 봄은 오행 중 목에 속한다. 벼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밭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농경사회를 이룬 옛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살아내고 관찰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오행의 부호로 표현했다.

 

오행을 구성하는 한자 木(목), 火(화), 土(토), 金(금), 水(수)의 원래의 뜻은 나무, 불, 흙, 쇠, 물 이렇게 물질이지만 서양의 물, 불, 공기, 흙의 사원소설과는 의미에 차이가 있다. 사원소가 단지 만물의 기본구성물질을 의미한 것에 비해 오행은 만물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변화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상징이다.

 

옛사람의 마음이 되어 본다. 그들은 봄을 오행 중 발생(發生)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목에 배속했다. 나무 목의 한자는 상형문자인데 나무목의 기원이 되는 현재의 나무목 이전의 글자는 두 가지가 있다. 각각 금방 나온 나무의 싹, 제법 크게 자라난 식물류를 뜻했다.

 

초봄, 아직 쌀쌀한 날씨에 차고 단단히 굳어있는 밭을 처음 뚫고 나오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것을 뚫고 나오는 월동추, 시금치, 부추의 생명력이 목의 에너지이다. 그 밭을 뚫고 나오는 채소는 그만큼 생명의 에너지, 목의 기운이 강하다. 그래서 건강에 좋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내는 시어머니는 아들의 양기(陽氣)를 세워 며느리를 좋게 하기보다 사위의 양기를 세워 딸을 좋게 한다는 의미로 “봄 부추는 아들 대신 사위에게 준다”라고 했다. 봄 부추의 생동하는 에너지가 풍자를 담은 속담에 해학적으로 스며있다.

 

싱긋이 웃으며 햇살을 느껴본다. 땅의 가능성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받아서 하나씩 펼쳐질 것이다. 지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발생하는 계절의 차이를 냄새로 다르게 느끼는 인간의 몸이 새삼스레 신기하다. 코끝을 간질이는 발랄하고 상쾌한 에너지를 느끼고 그것을 목의 기운, 발생, 만물에 나고 자라는 에너지로 표현한 옛사람의 마음과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반복됐고 그리고 앞으로 반복될 다른 봄들의 흐름 속에 잠시 기대어 본다. 이 봄 내음, 에너지를 들이키며 내 마음을 본다. 무엇을 품고 있는가. 어느 계절에 있는가.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한다.

배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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