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이제 영화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2023.06.20 06:00:00 13면

 

정치적 무관심이 영화적 무관심을 부른다. 이제 아무도 영화’판’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무리 코로나19 탓이었다 해도 이제 극장가를 두고 수직계열화 문제니 스크린독과점 문제니 등등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특히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그렇다. ‘범죄도시3’가 개봉 초기 전국 2352개 스크린에 걸린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국 스크린 수는 2700개 아래 수준이다. 그동안 돈을 못벌었으니, 뭣보다 극장가가 망하게 생겼으니, 한 영화만이라도 돈을 좀 번다는데 뭐 그리 잘못이겠느냐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적어도 생각을 해야 한다. ‘범죄3’가 그렇게 시장을 싹쓸이 하고 있을 때 지난 해 베를린영화제와 런던비평가협회에서 상을 탔으며 올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이었던 ‘말없는 소녀’는 전국 스크린 45개에 불과한 것에 대해 생각을 좀 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는 정권이고 세상이라고 한다. 영화 따위 어떻게 된다 한들 이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식이다. 심지어 정부가 영화진흥위원회를 지목해 혈세를 낭비했다며 곧 감사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CJ등 주요 투자배급사에 대해 경찰이 관객수를 조직했다며 압수수색을 벌인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혹시 영화계 길들이기의 일환인 바, 지금의 정권이 영화계를 좌파의 온상으로 보는 편견의 소산 아니겠느냐는 일말의 의혹같은 것에 대해서도, 그래서 뭐 어쩌냐는 식이다.

 

세상 곳곳에 냉소와 조소가 판을 친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파고 그 뒤를 터는 것만이 흥미거리가 된 세상이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미명하에 특정인 몇몇의 인생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재수없이 당했군,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양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언론인들, 기자들에게 얘기를 하면 돌아오는 소리라고 하는 것이, 그 문제는 아무도 모른다느니, 누구도 관심이 없는 것이라느니 하는 답변 뿐이다. 기사 조회 수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다들 먹고 사는 데 바쁜데 그런 기사를 쓴 들 눈길이야 주겠냐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기사를 써야 눈길을 주고 그 눈길이 더 큰 기사를 만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바로 그렇다. 한국 최고,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추앙하던 때는 다 잊은 듯 하다. 영화제를 둘러싸고 특정인에 의한 인사 전횡으로 사유화 논란이 치솟고 있음에도 부산 지역 외에서는 변변한 기사 하나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도 배우들이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조명을 받으며 개막식 레드 카펫을 걸어 가는 장면은 너도나도 실 시간으로 실어 나를 것이다. 세상이 그런 것이다. 그렇게 변한 것이다. 


분명히 경고하는 바, 이런 식이라면 K-컨텐츠 붐은 향후 4~5년 안에 가라 앉을 것이다. 그건 홍콩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다. 홍콩영화계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정치적으로 미래비전을 잃으면서 그 빛이 꺼졌다. 일본은 자민당이라는 70년 철통 우파 독재가 영화를 잡아 먹었다. 이제 더 이상 구로사와 아키라와 같은 영광은 일본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영화를 망가뜨린다. 영화적 상상력이 사라지면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진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자 어떤가. 또 그게 뭐 어쩌냐는 얘기냐는 식인가. 암울한 시대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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