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도시기행] ‘정성운동’의 발원지 함흥-흥남

2023.06.29 06:00:00 13면

 

‘정성운동’은 함흥-흥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에서 ‘정성운동’은 1961년 흥남에서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소년을 흥남비료공장 의료진과 함흥의대 실습생들이 자신들의 피부를 이식해 살려낸 이야기를 ‘정성운동’으로 호명한 대중운동이다. 160여명의 피부를 이식해 기적적으로 살려낸 방하수 소년의 이야기는 사회주의 인간형상 창조의 원형으로 불려진다. 사회주의 인간형상이란 자신의 피와 살을 남에게 주는 헌신과 희생정신을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성운동’의 발원지인 함흥의학대학은 1990년 정성대학으로 개칭했다.

 

함흥-흥남은 어떻게 ‘정성운동’의 발원지가 되었을까. 당시 북한은 해방과 함께 전쟁으로 파괴되고 몹시 가난했다. 남북의 체제 대립이 심했던 냉전시기 사회주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무엇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먹고 입는 문제부터 해결해야했다. 화학공업지대로서 천혜의 자연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함흥-흥남에는 숙련된 노동력과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었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함흥의 재건은 최대의 관심사였다. 함흥과 흥남의 중간지점에 건설된 2.8비날론 공장은 전 국민의 관심과 지원으로 세워졌다. 함흥-흥남이 재건되는 과정에 생겨난 대중운동은 집단주의가 발현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국가는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해 개인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다. 자신의 피와 살을 떼어준 사건은 이 시기 생겨났다.

 

현재 북한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집단주의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산물이다. 당시 누구나 잘사는 사회를 꿈꾸며 대중운동에 참여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3도 화상을 입은 소년에게 자신의 피부를 떼어준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북한 사회에서 의사들이 지켜야할 윤리 규범의 원형이 되었다. 의사들은 정성이라는 글을 새긴 가운을 입고 환자를 치료한다. 피가 부족하면 의사나 간호원이 먼저 팔을 걷고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것을 장려한다. 선구적인 모범 행동은 사회주의 우월성이라는 선전으로 포장된다. 대중운동이 집단주의로 발전하면서 북한은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었다. 국가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함흥-흥남은 사회주의 인간형상의 원형을 창조한 ‘정성운동’의 발원지로 호명되었다.

 

최근 황해남도 은천군병원 산부인과 안경실 간호사 이야기가 노동신문을 비롯한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화상환자에게 자신의 피부를 내어주고 위급한 환자에게 피를 나누어 주었다는 미담이다. 국가는 ‘정성운동’의 선구자로 집단주의 정신을 구현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치켜세운다. 여기에도 빠지지 않고 방하수 소년이 등장한다. 피와 살을 주었던 함흥이야기는 국가가 필요할 때마다 호명되어 대가없는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정성운동’이 지금도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위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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