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이 모든 게 다 그놈의 죄의식 탓

2023.07.03 13:19:42 16면

119. 보 이즈 어프레이드- 아리 에스터

 

미국 뉴욕 출신의 감독 아리 에스터의 영화들(‘유전’, ‘미드 소마’ 등)은 난독증의 필사본이다. 그의 최신작으로 국내에서 막 개봉될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절대 해독 불가 아리 에스터 월드’의 최고봉이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아리 에스터도 놀랍지만 이런 영화에 돈을 대고 문을 열어 주는 투자자와 극장들도 놀랍다.

 

이건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 들인 돈만큼을 수익으로 환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관객들을 영화 인식의 인내로 내몬다. 미지(未知)와 불가지(不可知)가 마구 뒤섞여 있는 영화. 노력하면 결국은 알 수 있는, 아직 모르고 있을 뿐(未知)이지만 동시에 그래도 결국엔 알 수 없는(不可知) 얘기가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인공인 보(호아퀸 피닉스)가 어렸을 때부터 싱글 맘인 모나(패티 루폰)로부터 정서적 학대에 시달려 왔고 그것이야말로 성인이 돼서도 그의 편집증의 궁극적 원인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끊임없이 살모(殺母)라는 존속 살해의 강박증을 가지고 있음은 느낄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것, 정신병리학적인 것이라는 점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보가 한 번도 섹스를 해 보지 않은, 에이섹슈얼(asexual : 무성애자. 무성생식)인데 나중에 보니 아들이 셋이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보통의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에 맞지 않는다. 알 수가 없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1975년생인 보란 인물, 현재 48세인 남자가 겪고 있는 신경증적 질환에 대한 이야기이(일 수 있)다. 다분히 신경정신학이나 정신질환 연구, 심리학자들일수록 이해도가 빠른 영화일 수 있겠다.

 

무려 179분이나 되는 이 영화는 총 4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는데 뉴욕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보의 일상이 1부이고 거리에서 칼에 찔린 후 어떤 중년 부부의 집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 2부이고 그 집안의 괴물(또 다른 환자로 이라크 파병 이후 PTSD를 앓고 있는 전직 군인의 공격으)로부터 탈출해 숲속에서 히피로 지내는 이야기가 3부이며 4부는 괴물로 변한 전직 군인에게 쫓기다 엄마의 장례식에 오게 된 후 어릴 적 여자 친구인 일레인(파커 포시)과 기습적으로 섹스를 하게 되는데 그가 평생을 걱정해 왔던 것과는 달리 남자인 자신이 복상사(腹上死)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인 일레인이 성관계 중 돌연사를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서 자신이 부계가 모두 복상사를 했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터이다.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것도 그렇게, 단 한 번의 사정(射精)으로 엄마를 임신시킨 후 사망한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엔 주인공 보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핵심 키워드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살부(殺父) 개념을 형상화한 셈이다. 남자는 어릴 때 처음 만난 이성이 어머니임으로 아버지에게 경쟁심을 느끼게 되고 그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가 엘렉트라 콤플렉스(딸이 엄마에게 경쟁심을 느끼게 되고 죽이고 싶어 하는 심리.)인데 가부장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부권의 권위가 사라진 현대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에게 해당하거나 교차하는 특성을 지닌다. 주인공 보가 엄마인 모나에게서 느끼는 것은 오이디푸스도 엘렉트라도 아닌, 아니면 두 개가 동시인 심리이다.

 

 

영화의 1장에 해당하는 첫 번 째 에피소드가 가장 현실에 근접해 있는 내용이다. 뒤의 세 장은 모두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다. 그건 실재라기보다는 감독인 아리 에스터가 반항하고 저항하려는 가부장 혹은 모계사회의 불필요한 권위의식, 종교의 외피를 쓴 가식적인 윤리 의식, 자본주의(특히 중산층)가 만들어 내는 끝없는 허위의식에 대한 관념적 비판과 비난의 서술이다. 머릿속에서 하는 얘기이기 때문에 두서가 없을 뿐이다. 핵심은 자기 식의 비판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보는 자신의 정신과 의사(스티븐 헨더슨)와 상담하는 것을 오프닝 시퀀스로 보여 준다. 의사는 아버지의 기일에 맞춰 엄마 집을 방문하게 돼서 좋으냐고 질문한다. 보는 의사에게 ‘꼭 갈 필요가 없고 자신이 가도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의사는 자신의 노트에 ‘죄의식(GUILT)’이라 메모한다. 의사는 그에게 신약을 주면서 꼭 물과 함께 먹으라고 한다. ‘꼭’이라고 몇 번을 강조한다. 집에 돌아온 보는 일찍 잠자리에 들지만 옆집에서 두 시간에 한 번씩 보내는 항의 쪽지에 시달린다. 음악 소리를 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복도 바깥에서는 헤비메탈의 강렬한 폭발음이 터지는 중이다.

 

 

보의 환청은 무음인가, 아니면 음악 소리가 환청인가. 항의 쪽지 때문에 잠을 설친 보는 엄마 집으로 가기 위해 슈트 케이스를 싸고 방 키를 들고 나서지만 그 찰나 방에 놓고 온 무엇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같은 복도에 사는 아파트의 누군 가가 트렁크와 열쇠를 가져가 버린다. 황당해 하고 있는 그에게 아파트 청소원이 지나가면서 ‘너는 이제 X됐어.’라고 말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 놨는데 가방과 열쇠를 잃어버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넌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고 쏘아붙이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린다.

 

극심한 불안과 혼란한 정신 때문에 의사가 준 신약을 먹으려고 하자 이번엔 생수가 바닥이 나고 수도가 고장이 났는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약을 그냥 삼킨 후 용법을 살펴 본 보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데 물 없이 이 약을 먹으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돼있었기 때문이다. 물을 먹기 위해 집 건너편 편의점을 가려다가 보는 이런저런 걸인들과 부딪혀 도망 다니느라 헐덕댄다. 급기야 그는 목욕 중에 있는 자신을 욕탕 천정에 매달려 있다가 그를 덮친 청소부와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이 장면은 명백히 엄마 배 안 물속에 있는 태아를 누군가 공격한다는 것으로 인간은 출생 전부터 심각한 위협에 시달린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자를 피해 벌거벗을 채로 길가에 나온 보에게 역시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이미 넷이나 찔러 죽인 거지가 휘두른 칼을 맞고 정신을 잃는다.

 

이런 등등의 서사들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1945년에 만든 영화 ‘스펠바운드’ 속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풍 환상 장면(주인공 존 발렌타인 박사, 곧 그레고리 펙은 같은 내용의 꿈을 반복적으로 꾸는데 얼굴 없는 남자가 녹아내린 시계를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는 장면이다. 동료 박사인 콘스탄스, 곧 잉드리드 버그먼은 존이 하얀 식탁보에 난 포크의 삼지창 자국을 없애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그가 극심한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간파한다.)을 연상케 한다. 아리 에스터 식 ‘환상특급’이자 ‘기묘한 이야기’의 결정판이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인 셈이다.

 

 

영화는, 인간이 지닌 정신병적 증후군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 카테고리나 심도에 비해 수사학적으로 지나치게 과장 왜곡돼 있거나 말이 말을 낳은 경우라는 점, 정신병이 사실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스템이 인공적으로 만들고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죄의식이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든 마더 콤플렉스든 그 모든 것이 지적 허영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영화의 키포인트로 보여진다. 관념을 관념의 끝으로 밀어붙여 그 추상의 실체를 더듬게 만드는 기이한 방식의 영화이다. 옳고 그르거나 맞고 틀린 식으로 재단할 영화가 아니다. 자기에게 대입해 보면서 느끼고 직관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때론 그렇게 정신적일 때가 있다. 이게 다 죄의식 탓이다. 자 근데 그게 과연 무슨 말인가.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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