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쇼펜하우어의 개

2023.07.06 06:00:00 13면

 

이기적 염세주의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칸트 사상을 왜곡하여 사이비 이론을 펼친다며 당대의 인기 철학자들을 모조리 인정하지 않았지요. 특히 독일 관념론의 대표적 인물인 헤겔(Hegel)을 싫어했는데, “정신병자의 철학을 늘어놓는 추악한 남자”라며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그가 푸들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이름을 ‘헤겔’이라고 짓고는 “이 멍청한 헤겔 새끼!”라고 구박하다가 화가 날 때면 개의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는 얘기는 놀라운 에피소드예요.


그런데, 극적 반전이 일어나지요. 쇼펜하우어는 그 개가 매우 충성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름을 흰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진아(眞我)를 뜻하는 ‘아트만(atman)’으로 바꾸었어요. 사람보다 개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된 그는 개의 눈을 바라보면서 “세계의 영혼을 본다”고 말했대요. 반면 인간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고슴도치에 비유하며 서로를 찌르는 욕망덩어리이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늘 시달리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지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그렇게 발전돼간 듯해요.


짐승의 세계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요. 자식을 위해서 생명마저도 아까워하지 않는 모정(母情) 이야기라면 몰라도, 자기가 낳은 아이를 죽이는 어미 이야기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요. 갓난아이를 목 졸라 죽인 다음 암매장하거나 냉장고에 넣어 죽게 만든 비정한 어미 사건들이 온 국민에게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을 안겨주는군요.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짓들을 할 수 있나요. 


지난 2015~2022년 출생 미신고 아동이 전국에서 무려 2123명이나 된다는 것도 처음 밝혀졌어요. 뒤늦게 그 아이들의 행방과 생사를 확인한다고 전국이 시끌벅적하군요. 혹여라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아기가 짐승보다도 못한 부모의 하찮은 소유물처럼 함부로 다뤄지고 살해된 것은 아닌지 더럭 겁이 나서 뉴스 살피는 일조차 두려워졌어요.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런 일까지 발생하는지 내남없이 한숨이 절로 나는 요즘이네요.


‘인구절벽’이라면서요. 지역과 나라가 소멸할 거라면서요. 2006~2021년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280조 원을 쓴 나라가 2000여명 신생아의 생사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요. 이쯤 되면 지진을 예측하고 산으로 달아나는 지혜라도 지닌 미어켓 등 짐승보다 인간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겠네요. 이런 수준이라면 오늘날 인간은 한없는 이기심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소중히 여기는 영락없는 고슴도치 맞군요. 화풀이 대상으로 시작됐다가 극존(極尊)의 이름까지 얻은 쇼펜하우어의 푸들만도 못한 인간들의 양심과 갈가리 찢긴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을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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