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투견장(鬪犬場)의 구경꾼들

2023.08.04 06:00:00 13면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말이 있지요.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게 되니 항상 말조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어요. 옛 선인들이 삶의 지혜로 여기고 지켜온 지혜 중에도 ‘신언(愼言)’은 참으로 소중해 보여요. 말을 삼가지 않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 ‘쓸만한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즐기는 도박 가운데 투견(鬪犬)보다 잔인한 노름은 없을 거예요. 불법 투견장 단속 뉴스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걸 보면 투견은 마약 같은 매력이 있는 모양이에요. 개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 물어뜯는 장면을 도박으로 삼는 불법이 극비리에 끈질기게 유통되는 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현상이죠. 물리고 찢겨 악귀처럼 만신창이가 되는 개들을 보며 투기꾼들은 과연 어떤 희열을 느낄까요?


투견장의 광분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걸어놓은 ‘판돈’일 거라는 짐작은 들어요. 자기가 베팅한 개가 이기면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럴 개연성이 높죠. 그러나 왜 하필이면 피투성이 개싸움일까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피를 보면 흥분하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보면 또 다른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아까운 인명이 스러지는 비극엔 아랑곳없이 정치권은 여전히 사나운 개싸움이군요.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권력의 사냥개를 자처한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은 더는 헌법을 조롱하지 말고 즉각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군요. 여당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죠.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공당이 아닌 ‘견광(犬狂)’들만 모인 광기 집단이 되려는 것인가”라며 맞받았네요.

 

이쯤 되면, 우리 정치권의 여야 공방은 영락없이 ‘개싸움’ 수준으로 전락한 듯하군요. 좌우 흑백논리에 갇혀 긴 세월 갈등을 지속해온 우리 정치권은 이제 정치적 이득을 목적으로 반목·반감을 조성하는 ‘가짜뉴스 장난질’에 이골이 난 모양새예요. 그나마 의로운 국익·공익이 ‘판돈’이 아니라 오로지 사익(私益)뿐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요. 정치꾼들은 자기 패들을 뭉치고, 중도층에 사기를 쳐서 어떻게든 과반수를 만들기만 하면 판돈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도박심리에 포획된 게 분명해요. 천박한 ‘대박’ 마약으로 지지자들을 광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일을 정치라고 착각하는 듯한데, 이건 정말 큰일 날 시한폭탄 아닐까요? 


해법을 찾지 못한 비관론자들은 곧잘 ‘절망’을 입줄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날마다 상대방에게 쏟아부을 험구(險口)나 궁리하는 정당들이 그 절망의 씨앗이죠. 그 자체가 절망이에요. 정치인들은 말을 삼가는 훈련부터 다시 받아야 해요.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으라’는 탈무드 경구가 생각나네요. 잔혹한 투견장에 끈질기게 나타나면서도 바른말이라곤 한마디도 하지 않는 구경꾼들이 더 문제라는 어떤 지적이 참 아프군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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