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행 칼럼] 인간은 폭력성의 소우주

2023.08.07 06:00:00 13면

 

소설이나 영화를 읽거나 보다보면 메시지와 상관없는 것들은 지나치기 마련이다. 이른바 사각지대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 지점이 메시지보다 더 비중 있게 기억되기도 한다. 어떤 소설 혹은 영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 채.

 

'인간은 폭력성의 소우주'란 말도 그런 것 중 하나다. 메시지를 떠받치는 말이 아니어서 지나쳤다가 개별로 기억한 것이다. 여운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말 그대로 인간은 폭력적 존재인 까닭이다. 인간은 알게 모르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말을 꺼내자마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한 친구는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과 인간과 투쟁하면서 살아왔기에 폭력이라는 DNA가 몸에 배어있다"고 말한다.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테면 인간이라는 동물의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폭력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 것이기도 한 셈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 안의 폭력 찌꺼기는 나쁘게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행사하는 폭력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깊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다. 살의가 느껴지는 욕, 인격을 모독하는 욕, 남을 ‘왕따’ 시키기 위한 말, 폄하의 언어...... 믿기지 않다면 당장 포털 사이트 아무 댓글이나 한번 훑어보기 바란다.

 

물론 이런 말들의 연원은 깊다. 전통시대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그 말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우리말 상소리 사전』(1994년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된 상태)까지 있겠는가. 봉건 시대라는 노골적 수직 시대를 견뎌내기 위한 언어적 흔적으로 치부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바야흐로 우리는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상호 존중이 중시되는 수평적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폭력적 언어를 버리지 못하고 일상화하고 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언어는 다분히 현실을 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분석은 너무 쉽다. 현실이 폭력적인 것이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기초적 인간관계가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면 우리의 삶은 매우 불행해진다. 곧 우리 사회는 인간이 숨 쉬고 살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그런 사회는 우애나 연대보다 증오나 혐오를 낳기 마련이다.

 

톨스토이가 소설을 통해 인류의 우애를 꿈꾸었다면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는 인터넷 둥지를 통해 꿈꾸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폭언과 저주로 가득 차 있지 않는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엇비슷한 처지의 인터넷 주민을 온갖 조리돌림하고 있지 않는가. SNS의 부정성은 어느덧 긍정성을 넘어선 게 아닌가한다. 권력에 대한 견제감시와 정보교환, 커뮤니티라는 긍정성 못지않게 혐오라는 부정성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문제의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폭력이 위험 수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폭력성의 소우주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상당 부분 거세시켜야 한다.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그건 권리에 비례하는 책임 의무 지우기 일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폭력은 나와 공동체를 지키기보다 나와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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