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 역사기행] 인쇄공 랑뱅이 된 빅토르 위고

2023.10.17 06:00:00 13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62년 그가 쓴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지금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다. 이 소설은 우연히 세상에 나온 게 아니다. 저자의 풍부하고 생생한 경험에서 비롯된 고도의 전략이 들어있는 애민 소설이다. 위고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 만화가였지만 유명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양 분야에서 펼친 그의 헌신과 이념 싸움은 ‘레미제라블’을 더욱 흥미진진하고 리얼하게 만들었다.

 

이 독보적인 작가는 1840년대까지 왕당파였다. 하지만 점차 민주주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루이 필립 왕의 은총으로 1848년 파리 8구의 시장이 된 그는 이듬해 제헌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1849년 7월 9일 의회 당선연설에서 빈곤과 부자들의 이기주의에 반대하는 투항을 보임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을 전율케 했다. 민중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정치인 위고의 반항정신이 생생히 드러났다.

 

한편, 그는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친구이자 동맹이었다. 따라서 그는 친구의 대통령 출마를 적극 지지했고, 당선을 위해 큰아들 프랑수아-빅토르와 함께 창간한 '레벤느망(L’Événement)' 신문을 통해 활발한 캠페인을 벌였다. 위고는 루이-나폴레옹이 분명하고 영리하다고 판단했고, 그에게서 프랑스의 위대함을 보았다.

 

그러나 이는 곧 철회됐다. 1851년 12월 2일 그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든 위고는 루이-나폴레옹을 대역죄로 고발했다. 위고는 보나파르트 왕조에 신이 내린 가장 끔찍한 벌은 그를 후계자로 준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화국을 배신하고 헌법을 파괴한 이 자를 저지하기 위해 위고는 저항위원회를 조직하고 절친인 폴 뫼리스, 오귀스트 바크리, 아들 빅토르와 함께 강렬한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12월 4일 파리 시내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고 피비린내 나는 억압이 시작됐다. 위험해 처한 위고는 며칠 동안 지하에 숨었다.

 

경찰은 그를 수배했다. 1851년 12월 11일 저녁 파리 북역, 중년의 여행객이 브뤼셀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보통의 키에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이 남자. 호주머니에는 인쇄공 랑뱅(Jacques-Firmin Lanvin)의 여권이 들어 있다. 그는 바로 빅토르 위고였다.

 

벨기에 행 기차 안에서, 그는 폭발적 힘과 선견지명이 있는 눈부신 재능으로 인간성이 넘치는 그의 위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해 나갔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패자의 쓴맛과 권력을 잡은 ‘파괴자’에 대한 증오를 곱씹기도 했다.

 

무사히 브뤼셀에 도착한 그는 그랑 플라스(대광장)의 ‘풍차집’에 들러 방 한 칸을 빌렸다. 너무 좁고 자신의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광장 안쪽으로 몇 발자국 더 들어 가 ‘피종(비둘기)의 집’을 발견한 그는 이 집의 넓은 방을 세냈다. 영국 저지섬으로 떠나기 전 위고는 이곳에서 약 500일 간 살며 글을 썼다. 신세는 처량했지만 추억은 아름다웠던 것일까? 위고는 그가 살았던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로 여겼다.

 

 

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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