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딥페이크’가  ‘보이스피싱’을 만났을 때 

2023.11.07 06:00:00 13면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와 성 정체성마저 혼란스러운 전청조 씨의 사기 혐의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 일변도네요. 웬만한 사람들은 실물 구경도 못 해 봤을 벤틀리 자가용을 척 사주는 남자(?)의 사기술에 정말로 남 씨가 일방적으로 당한 건지는 아직 아리송한 상태죠. 백억 대 고급주택을 비롯해 억 소리 나는 명품들 이야기에 구경꾼들은 대략 주눅이 잔뜩 든 분위기이군요. 


대다수 국민에게는 꿈 얘기 같은 두 사람의 스캔들 뒤에 도사린 도무지 경계가 없는 인간의 욕망이 슬프게 느껴지네요. 타인의 욕망을 자극해 감쪽같이 속여내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는 사기꾼들의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갈수록 궁금해져요. 낯모르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상상도 못 해 본 고가(高價)의 선물을 앞세워 유혹한다면 누군들 이를 거절할 재간이 있을까요. 

 

지난 6월 검거된, 중국 항저우(杭州)에 근거지를 둔 최대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조직 한국인 일당들이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Deepfake)’를 활용한 신종 수법을 개발해 예행연습까지 했다는 소식에 모골이 송연해지는군요. 딥페이크는 적대관계생성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라는 기계학습(ML) 기술을 사용하여, 기존 사진이나 영상을 원본에 겹쳐서 가공해 낸다네요. 

 

피해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112나 검찰청에 사실 확인을 했지만, 사기단 조직원들이 미리 설치한 악성 앱으로 통화를 가로채는 바람에 소용이 없었다고 해요. 법복과 법전·검사 명패까지 놓인 가짜 검사실에서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겠지요. 최근 보이스피싱 미제사건 5439건 모두가 이들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피해액은 무려 1491억 원으로 불어났대요.

 

하마스의 가상천외한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중동전 인지전(認知戰·cognitive warfare)에도 딥페이크 속임수가 등장했다지요. 딥페이크로 조작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아기의 참혹한 모습이 하마스에 비판적이었던 팔레스타인 여론을 침묵하게 만들고, 아들과 형제를 기꺼이 전쟁터로 내모는 동력으로 작동한다는군요. 가짜뉴스가 양질일수록 여론 조작의 힘은 무한히 커지는 원리에요.

 

조금은 엉뚱하지만, 수십조 원의 재력가로 둔갑해 재벌 2세 행세로 지능적인 사기행각을 벌인 전청조 같은 사람이 딥페이크 기술까지 장착한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아니, 어쩌면 이미 이 지구상에는 첨단기술을 확보한 사기꾼들이 상상 못 할 일들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죠. 얼굴도 목소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녀가 울먹거리는 동영상에 속지 않을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기나 할까요. 더욱이 112나 검찰청 전화까지 해킹으로 장악당한 상태라면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이 신종 수법을 막아낼 방도를 우리는 반드시 찾아내야 해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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