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 문화기행]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과 파리 오텔드빌

2023.11.14 06:00:00 13면

 

1981년 사형 제도를 폐지한 프랑스. 프랑수아 미테랑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곧 바로 인권에 위배되는 사형제도를 과감히 폐지했다. 그로 인해 그는 오늘날까지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이 사형 제도의 폐지는 수많은 인권옹호자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소설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빅토르 위고였다.

 

위고가 처음 사형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건 1828년 어느 날 저녁. 그는 파리 그레브(Grève) 광장에서 사형 집행인이 단두대에 기름을 붓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를 본 그는 오늘밤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쓴 글이 ‘사형수 최후의 날(Le Dernier jour d’un condamné)’이다. 끔찍한 집행 전 24시간 동안 사형수의 마지막 생각을 전하는 일기 형식의 짧은 소설이다.

 

그 후 1834년 위고는 ‘클로드 귀외(Claude Gueux)’ 라는 글을 한 편 더 썼다. 이 소설에서 그는 어린 시절 목격한 사형 집행의 잔인성을 묘사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그레브 광장에서 사형 집행인들이 단두대를 세우고 준비하는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법적 살인’에 사로잡힌 사형 집행의 공포와 야만성에 반기를 들고 처벌의 부당성과 비효율성을 입증함으로써 여론을 변화시키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작가적 재능과 정치적 지위를 이용하여 소설, 시, 법정에서 변론, 의회, 그리고 상원에서 연설과 투표를 통해 이 대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물심양면 노력했다.

 

위고의 사형폐지 운동을 촉발시킨 그레브 광장. 파리 중심부인 4구에 위치한 이곳은 현재 파리 오텔드빌(시청)이 자리한 수려한 광장이다. 샤틀레(Châtelet) 역과 오텔드빌(Hôtel de Ville) 역이 지나는 이곳은 과거에 수도의 역사를 장식한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5세기 동안 주요 범죄자들을 위한 가장 끔찍한 공개 처형이 이곳에서 거행됐다. 군중들은 처형식 맨 앞줄에 앉으려고 서둘러 입장했다. 고문이 무서울수록 군중들은 즐거워했다. 그리고 사형 집행인이 완벽하게 기술을 발휘했을 때 그는 군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사형수는 죄목에 따라 불에 타거나, 구타당하거나, 교수형을 당하거나, 도끼로 목이 잘렸다. 최악의 범죄인 왕의 살인자는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1610년 앙리 4세 왕을 살해한 라바이악(Ravaillac)은 이 그레브 광장에서 네 마리의 말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 형을 당했다.

 

이 광장이 ‘그레브(파업) 광장’이라고 불린 이유는 큰 모래와 자갈이 나타나는 하천의 가장자리였기 때문이다. 센 강둑에 배들이 도착하면 노동자들은 화물을 하역하는 작업을 했다. 19세기 분노한 이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더 인간적인 근로 조건을 요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사업주들은 양보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모든 일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에서 ‘파업’의 탄생과 용어는 이런 역사적 일화를 가지고 있다.

 

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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