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북 콘서트’가 기가 막혀 

2023.12.06 06:00:00 13면

 

‘낙양(洛陽)의 지가를 올린다’라는 말이 있어요. 진(晉)나라의 시인 좌사(左思)가 지은 ‘삼도부(三都賦)’를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베끼는 바람에 종잇값이 올랐다는 뜻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정도겠죠. 예나 지금이나 책이 인류문화 전승 발전의 결정적인 매개체라는 건 상식에 속하지요. 그런데, 지금은 내용의 가치에 대한 공감 확산으로 책을 사는 독서인들은 희귀한 세상이 됐어요. 


고(故) 김동길 교수가 쓴 칼럼 ‘3김(金) 낚시론’은 아찔했어요. 정곡을 찌른 이 용감한 글은 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 씨 등 이른바 3김이 1980년 초에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싸우는 바람에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원죄를 비판한 내용이었어요. 당시 칼럼을 접한 DJ는 “낚시하기 좋은 장소를 가르쳐 주면 그리하겠다”며 웃어넘겼고, YS는 “언론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받아넘겼다는 일화가 있죠.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출판시장의 왜곡 현상은 참으로 심각해요. 한때 베스트셀러 조작 사건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엔 출판사 직원들이 서점을 돌면서 사들이거나, 지인의 개인정보로 도서를 사재기해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마케팅업체를 끼고 사재기를 벌이는 신종 수법까지 폭로돼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었었죠.


언제부터인가 콘텐츠의 수준이 독자를 확산시키는 게 아니라, 책을 쓴 사람이 누구냐가 판매량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죠. 물론 유명 인사 누가 읽고서 무슨 말을 했느냐가 변수로 작동하기도 해요. 그런데 ‘북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요즘 출판기념회가 언제부터인가 뉴스를 생산하는 이벤트 현장으로 변질하더니, 근래에는 아예 ‘말 폭탄 투척’을 일삼는 언어폭력 현장으로 변용되고 있어요. 


품격 있는 문화행사여야 할 ‘북 콘서트’가 막말·욕설·인신공격·도발·음모·변명이 난무하는 볼썽사나운 아사리판으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은,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참 불편하군요. 특히나 정치권이 치졸한 정쟁의 수단으로 마구 쓰고 찍어내는 잡문 서적을 과포장해 내놓고, 지지자들을 모아서 험구 난장판을 만드는 일이 다반사가 된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문제는 이 어리석은 저질문화가 개선될 가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죠. 


뭇사람들이 좌사의 ‘삼도부’를 미친 듯이 베끼게 해준 힘은 따로 있었어요. 장화(張華)라는 당대의 대문호가 이 글을 보고 극찬한 다음 공감하여 일어난 연쇄 현상이었지요. 오늘날 이 나라에서 펼쳐지는 천박한 ‘북 콘서트’ 행태는 달라져야 해요.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출판’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찬란한 인류문화의 총아인 ‘책’을 정치 장사꾼들의 ‘미끼’로 전락시키는 엇나간 시대의 풍경이 너무 아프네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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