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인분(人糞)을 사고 파는 두 젊은이와 그들을 사랑하는 여자 오키쿠의 이야기

2024.02.27 08:36:50 16면

146. 오키쿠와 세계- 사마모토 준지

 

세상의 영화가 ‘파묘’와 ‘듄 파트 2’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극장의 한편에서 조용히 상영되고 있는 일본 영화 ‘오키쿠와 세계’란 작품도 있다. 하늘에 구름이 있으면 땅에는 똥이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파묘’와 ‘듄 파트 2’가 천상의 영화이고 ‘오키쿠와 세계’가 ‘똥 같은’ 작품, 곧 졸작이라는 얘기 따위는 결코 아니다.

 

세상의 고귀함과 비천함은 다르지 아니하며 손바닥 안과 손바닥 밖의 차이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영화는 늘, 그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이쪽 저쪽 모두를 찾아봐야 한다.

 

 

물론 ‘오키쿠와 세계’는 똥 얘기로 가득 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두 명,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와 츄지(칸 이치로)의 직업은 ‘똥 장사’이기 때문이다. 두 청년은 에도(도쿄)를 돌며 똥을 사(퍼) 와서는 채소밭 농부에게 거름으로 파는 일을 한다.

 

1860년대 즈음해서 그 앞뒤로 한참 동안 그런 ‘비천하고 비루한’ 직업이 있었다. 야스케와 츄지는 주로 빈민가 공동주택을 돌며 똥을 푸는데 여기에는 몰락한 사무라이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가 살고 있다. 이 셋이 처음 만나는 곳도 동네 변소 앞이다.

 

츄지는 헌종이를 구해 떼다가 파는 일을 하다 비를 피하던 와중에 마침 똥을 푸던 야스케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일에 합류하게 된다. 여자 오키쿠는 변이 급해 종종 거리다가 이 둘을 만나게 된다. 셋은 똥으로 엮여 만나게 되고 각자 똥 같은 일, 똥보다 못한 세상살이를 겪지만 점점 더 서로를 위하게 되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키쿠는 무사들 간의 이상한 싸움에 휘말리는데 순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 사무라이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칼에 베여 죽임을 당하고 오키쿠 역시 성대가 잘려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똥 푸는 청년 야스케 역시 툭하면 끝물인 사무라이들에게 봉변을 당한다.

 

사무라이들은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채 집안에서 노름이나 하며 똥만 싸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똥을 사러 온 야스케에게 돈을 더 내라며 행패를 부리기 일쑤이다. 한편 야스케의 똥을 사는 채소밭 주인은 똥통의 똥이 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야스케에게 똥통을 들이붓기까지 한다.

 

졸지에 똥 세례를 받은 야스케는 분노하기보다는 킬킬 거리며 동료이자 동생인 츄지에게 이럴 때는 웃어야 한다고 말한다. 야스케는 소리친다. “이 똥 같은 세상 똥이나 먹으라고 했더니 정작 내가 먹고 있잖아!”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바로 이런 얘기로 돼 있으며 서장과 종장을 제외하고 총 7장으로 구성돼 있다.

 

영화는 계속해서 똥, 똥, 똥 얘기를 해대고 있고 야스케가 심지어 손으로 막 똥을 퍼 담을 때 약간 구역질이 느껴지기도 하지만(그 구토의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모두 흑백으로 찍은 것일 테지만) 점점 더 진짜로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똥은 똥이로되 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똥을 매개로 한 은유가 가득한 척 사실은 매우 직설적인 작품이다. 세상은 똥 같은 존재라는 강렬한 야유로 가득하다. 에도의 공동주택에 장맛비가 쏟아지고 골목에는 공중변소에서 넘친 똥물로 가득해진다.

 

한 남자가 미닫이문을 열고 밖을 보며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말한다. “구린내가 진동하는군. 정말 형편없는 동네야” 에도의 동네 골목길이든 지금의 세상이든,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현재의 일본, 더 나아가 세계 모든 나라가 똥처럼 엉망이 돼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영화는 때로, 아니 종종,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었고, 그걸 왜 지금 이 시기에 만들었으며, 한편으로는 그것을 어떤 사람, 곧 누가 만들었느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중견 감독 사카모토 준지가 만들었으며 시대 배경은 1858년에서 1860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그렇다면 사카모토 준지는 왜 지금, 하필 이 시기에 ‘오키쿠와 세계’라는 똥 애기 가득한 기이한 서사의 영화를 내놓을 생각을 했을까.

 

 

1858년과 1860년은 일본 근대사에 있어 극도의 혼란기이자 전환기였던 때이다. 1853년 일본은 미국 페리 함대에 의해 미일 수호 통상조약이라는 불평등 협약이 맺어지고 강제 개방과 개항이 이루어진다. 그 직후 일본은 600년을 지켜 온 막부 정권이 몰락하고 천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을 모색하는, 메이지 유신이 진행된다.

 

대정봉황(大政奉還 : 막부를 폐지하고 권력을 천황에게 바친다)을 통해 메이지 유신이 단행된 것은 1868년이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그 와중에 벌어지는 소소하면서도, 아주 작은 이야기인 척한다. 서사는 작지만 주제는 크다. 작은 골목길의 똥 얘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메이지 유신기 전체, 더 나아가 현대 일본 사회에까지 다가서려 하는 작품이다.

 

 

‘오키쿠와 세계’는 이전의 권력과 새로운 권력이 교체되는 대 혼란기의 와중에도 서민과 빈민, 낮은 계층과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겪는 삶은 변하는 것이 없으며, 또 없어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치는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용하다. 적어도 감독인 사카모토 준지는 그렇게 꿍얼거리고 있는 셈이다.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는 새로운 인물들이라고 해 봤자 사람들의 생활고, 더 나아가 인생고는 좋아지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특권은 더욱 특권화될 뿐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키쿠와 세계’에 나오는 하층 계급의 세 남녀 주인공은,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주고 버티게 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자신들 스스로에게 나온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 젊은 연대야말로 이 ‘똥 같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오키쿠는 사무라이 딸로서의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던 여자이다. 변소 앞에서 야스케를 만나서는 (똥 푸는 남자인 주제에)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식으로 대한다. 자신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 간다 한들 엄연히 사무라이 집 안의 딸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녀는 헌 종이를 떼다 파는 일을 하던 중인 츄이는 살갑게 대한다. 오키쿠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종이는 지식인의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키쿠는 처음에 지식인의 허위의식, 1850년대 당시 상층부에 기생하며 살아가던 사무라이들의 위선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녀가 야스케에게 친절한 마음을 갖게 된 것, 야스케처럼 결국 똥 장사가 된 츄지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의 성대가 다른 무사들에 의해 잘리고 난 이후이다.

 

그녀는 그 일로 언어장애인이 됐는데 그 같은 변화는 그녀로 하여금 사무라이의 딸이라 해 봤자, 곧 당대의 지식인이라고 해 봤자 발언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면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차이가 없음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오키쿠는 그런 점에서 감독인 사카모토 준지의 예술관을 투영시키고 있는바, 말하는 자=>글을 읽고 쓰는 자=>지식인=>예술을 할 수 있는 자=>영화를 만드는 자는 끊임없이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지녀야 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준지는 일본 영화계에서 일종의 ‘상남자’ 대우를 받는다. 그만큼 그는 선이 굵은 남성성이 강한 영화를 만들어 온 것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사회성과 정치적 주관이 강한 작품 역시 거리낌 없이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아 왔으며 논란도 자초했다.

 

2000년작 ‘얼굴’과 같은 작품은 섬뜩한 살인 미스터리 극으로 사카모토 준지의 연출 예각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를 보여 준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모티프로 한 ‘케이티(2002)’같은 영화는 그의 정치 감각이 다소 혼란스러움을 드러냈던 작품이었다.

 

한국의 채민서를 캐스팅하면서까지 ‘큰 영화’로 키우려 했던 2007년작 ‘망국의 이지스함’은 평화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일본 자민당의 정치 성향을 옹호하는 듯해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사카모토 준지가 다시 강렬한 사회파 영화로 돌아온 것은 2010년의 ‘어둠의 아이들’이었고 그 이후 많은 작품을 발표해 왔지만 한국에서는 ‘망국의 이지스함’ 이후 지금까지 명성을 회복하지 못해 왔다.

 

이번 ‘오키쿠와 세계’는 그의 연출 감각이 녹슬지 않았으며 정치적으로도 자신 특유의 아나키즘을 회복한 것으로 보여 준다. 세상은 똥이다. 똥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똥을 더러워 하거나, 무시하거나, 피하거나, 남에게 던지거나 하면 안 될 일이다. 그 같은 깨달음이 세상을 바꾼다. 변혁은 거기서 시작된다.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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