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 기획 - 공간②] "제가 재강이 곁으로 가면 국가가 기억해주겠죠?"

2024.04.16 06:00:00 8면

기억교실 지키는 故 허재강 군 엄마 양옥자씨
“엄마, 저 진로 바꿀래요...꿈이 한 번에 무너진 거죠”
순탄치만 않던 긴 싸움... "이젠 국가가 지켜주겠죠"

 

 

 

 

“제가 재강이 곁으로 가면 그땐 국가가 교실을 지켜주겠죠?”

 

지난 5일 경기신문이 찾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위치한 4.16기억교실은 1층 로비부터 엄숙한 분위기였다. 취재진의 개인정보를 기록한 후 기억교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간 2층에서부터 현장 보존된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바랜 수학여행 동의서와 낡은 창문틀은 일반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8명의 유가족들이 기억교실을 지켰다. 현재는 3명의 엄마가 일정표를 짜서 교실을 지키고 있다. 그중 8년 동안 교실을 지키고 있는 2학년 7반 고(故) 허재강 엄마 양옥자씨를 만났다.

 

◇ “엄마, 저 진로 바꿀래요”…지금 살아 있다면

 

양 씨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대교 쪽으로 도보 행진을 하던 중 3일 만인 19일에 해양수산부(해수부)에 연락을 받았다. 자신의 조카 차를 타고 진도항(전 팽목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시 재강 군은 수학여행 때 들고 떠났던 크로스백과 학생증을 목에 건 채 수습됐다. 양 씨는 “우리 아이들은 이름이 아니라 팔에 번호를 달고 나왔다. 재강이는 56번이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빨리 나와 줬다. 참 착한 아들”이라며 엷은 미소를 띄었다.

 

양 씨는 아들인 재강 군을 떠올리며 “(재강이는) 파충류를 좋아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이 취미생활로만 키우고 진로를 위해 성남에 있는 대학교로 가라고 했다”며 “수학여행을 가기 전 공부 열심히 하겠다며 진로를 바꾸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수학여행을 가면서 아이의 꿈이 한 번에 무너졌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양 씨는 숨을 한번 내쉬고 아들에 대한 기억을 이어갔다. 그는 “6월이 되면 생일에 맞춰 친구들이 추모 공원에 모여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며 “내색은 못하지만 항상 옆에 빈자리가 있다. 그게 재강이 자리인 것 같은데 친구들은 다 이렇게 있는데 내 아이만 없다. 지금 살아 있다면 뭘 하고 있을까 항상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4.16목공소’ ‘4.16합창단’ 등 여러 활동 중 기억교실 지킴이를 선택한 이유에 관해 묻자 “여기는 참사 이전에 공간이다. 아이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공부하고 꿈을 키웠던 곳”이라며 “체취가 가장 오래 남아있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을 지키는 건 당연하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공간”이라고 했다.

 

 

◇ 순탄치 않던 긴 싸움…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으로

 

안산 단원고등학교는 4월 16일 참사 이후 2학년 존치 교실과 교무실을 시민들에게 개방 했다. 참사 2년이 지난 2016년, 단원고 측은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 교실 부족을 이유로 철거를 요청했다.

 

당시 4.16가족협의회는 단원고 측에 2학년 교실 재사용이 아닌 교사와 기념관 증축을 제안했다.

 

제안은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원고 재학생 부모들은 16년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 당일 학부모측 성명서를 내고 행사를 저지했다. 성명서에는 존치 교실을 재학생들에게 돌려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유가족들은 단원고 교실 존치에 대한 피켓팅을 약 6개월 가량 진행했다. 2016년 5월 9일 7개의 기관(단원고, (사)4.16가족협의회,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경기도의회, 안산시,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이 존치 교실 이전에 대한 합의를 진행했다.

 

교실 존치에 대한 질문에 양 씨는 “책상은 남아있는 재학생들을 위해 뺐다. 재학생 부모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런데 재강이 책상은 빼지 않았다”며 “단원고에서 빼고 싶지 않았다. 미수습자 아이들과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은 안산교육지원청 별관과 본관을 거쳐 현재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으로 최종 이전했다.

 

양 씨는 “단원고에 있었을 때가 제일 마음이 아팠다. 별관 이전 당시 책과 같은 기록물만 옮겼다. 공간이 크게 똑같지 않았다”며 “지금 공간은 복도가 단원고 벽돌색과 똑같다. 그래서 보자마자 마음이 많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 “우리가 세상에 없어도 이젠 국가가 지켜줄 거예요”

 

단원고 2학년 1반~10반의 교실과 교무실은 2021년 12월 27일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됐다.

 

양 씨에게 기억교실의 다음 목표에 관해서 묻자 “국가가 지정한 기록물을 넘어 세계가 지키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세계유네스코 등재를 하면 그 꿈에 가까워질 것이다”고 했다.

 

4.16 기억저장소 측은 국가지정기록물 지정 이후 더 나아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힘쓰고 있다.

 

양 씨는 “911 테러 테마파크의 현장은 그대로 잘 보전하고 있다. 사고 영상과 기록물들이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만의 공간이 아닌 세계적인 기록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이 잘 됐다면 이태원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며 “누구도 우리한테 잘못했다 사과한 사람이 없었다. 책임자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진상규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임혜림 기자 ]

임혜림 기자 imhyelim_@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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