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상 깊게 봤던 동영상이 있다. 성인이 된 제자가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내용이었는데 꽤 감동적이었다. 어린 시절 제자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데다가 반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방과 후에 매일 담임 선생님과 루미큐브라는 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선생님과 같이 논다는 사실이 학생의 마음에 안정을 줬다고 했다. 제자는 지금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별 거 아닌 놀이가 학생에게 위안을 준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나도 학생과 함께 놀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과 같이 논다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몇 가지 장점 중에 가장 좋았던 점은 교사가 놀이에 참여하면서 교실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거다. 이것만으로도 함께 놀기를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이 한, 두 명씩 있다. 왜 함께 놀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고 말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마음속으로는 어울리고 싶은데 친구들에게 거절 당할까봐 용기가 안 나서 가만히 있는 거다. 이런 아이들은 교사가 주도하는 놀이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
첫 번째로 시도했던 놀이는 공기놀이였다. 아이들이 교사의 행동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반 전체가 참여하게끔 유도했다. 공기놀이를 시작할 때 원하는 사람만 들어오라고 했는데, 내가 공깃돌을 던지고 있으니 모두들 함께 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 시큰둥하던 남자 아이들마저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되자, 쉬는 시간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들이 없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자신만의 공깃돌을 챙겨오는 아이들이 생겼고, 집에서 부모님, 형제, 자매와 연습해오는 친구도 있었다. 공기놀이 유행 마지막 즈음에는 반장들이 진행하는 공기 토너먼트 대회도 열었다. 아이들 모두 공기놀이에 빠져있던 그 해에는 반에서 혼자 노는 친구가 사라졌다. 손가락을 열심히 사용해서 소근육 발달이 된 건 덤이다.
두 번째 시도했던 놀이는 루미큐브다. 루미큐브는 최대 4인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라 소수의 아이들과 놀 때 사용했다. 처음 숫자 블록을 받을 때 운이 중요하고, 머리를 써야하는 게임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했다. 한 판을 끝내는데 10분 정도는 필요해서 주로 시간이 넉넉한 점심시간에 놀았다.
반에 소극적인 성격이라 친구들과 전혀 교류가 없던 A가 있었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A에게는 몸을 쓰는 동적인 놀이보다는 조용히 머리를 쓰는 루미큐브가 딱이었다. 원래는 A와 둘이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게임 하는 걸 본 다른 친구들까지 합류해서 3~4인이 거의 매일 게임을 했다.
꾸준히 놀다 보니 말이 없던 A도 게임을 할 때는 조금씩 말을 했다. 아주 미세하지만 매번 보드게임에 참여하는 아이들끼리 친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 학기가 지나고 A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무리가 생길 정도로 A가 친구들 사이에 녹아드는 게 보였다. 놀이의 효과가 이런 것인가. 놀랄 정도였다.
교사를 하면서 이 직업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대체로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였을 때가 그렇다. 교사로서 개입한 게 성공했다는 느낌이 들면 뿌듯해진다. 학생과 함께 놀기는 시도 할 때마다 100퍼센트의 성공률을 보였다. 다음엔 어떤 놀이를 해볼까. 이 맛에 교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