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의 산들바람이 연평도를 감싸던 어느 날,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접시에 나물무침이 나왔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 낯선 파란 나물을 먹자 독특한 향과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나도 모르게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이 나물, 뭐예요?”
주인장의 답은 간단했다. “에누리 나물이죠.”
매년 봄이 오면 연평도 에누리 나물을 찾게 됐다.
연평도 사람들이 ‘에누리’라 부르는 이 나물의 표준어는 ‘어수리’다.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봄나물로 옹진군 소연평도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소연평도에 가면 어르신들이 바닷가 주변과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디 가세요?” 물으면 봄나물 캐러 간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혹시 에누리 나물 알아?”하면서 에누리 나물을 자랑한다.
에누리(어수리)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로 1~2m까지 자라는 다년생 풀이다. 봄에 돋아나는 연한 새싹을 주로 먹는다. 예로부터 에누리(어수리)는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품으로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문헌에 따르면 에누리(어수리)는 그 독특한 향과 약성이 임금의 건강에 이롭게 한다고 해 봄철 진상품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소연평도에서 태어나 지금도 사시는 이순옥 씨는 에누리(어수리)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씨는 “우리는 에누리를 참 다양하게 먹어요. 살짝 데쳐서 무쳐 먹기도 하고, 된장에 버무려 먹기도 하죠. 향을 좋아하는 분들은 생(生)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드시는 분도 계세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어 말한다.
“어린 에누리는 상추랑 같이 돼지고기 쌈으로 싸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에요. 특히 속이 쓰리거나 아플 때 에누리 나물을 먹으면 속이 확 풀리면서 소화가 아주 잘 되고 편안해져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래서 속이 아프면 에누리 나물을 찾죠.”

실제로 에누리(어수리)는 혈액순환 개선, 위장 기능 개선, 항바이러스 작용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평도 어르신들이 ‘에누리 나물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 진다’고 하는 데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에누리(어수리)는 어떻게 먹을까?
가장 흔한 방법은 데쳐서 무쳐 먹는 나물처럼 먹는다. 살짝 데친 에누리에 매콤달콤한 양념을 버무리면 쌉싸름한 맛에 미나라향이 더해져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옛날 소연평도에서는 어수리를 수제비로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소연평도는 태고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선캠브리아기의 운모편암과 석회암 같은 변성암, 그리고 각섬편암이라는 화성암이 섬을 이루고 있다. 이 섬에는 티타늄이 풍부한 자철광산이 있어 한때 광물 채굴로도 유명했다.
이런 특별한 지층과 토양이 에누리 나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게 아닐까?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봄이 오면 연평도 식당에서는 에누리 나물을 내놓는다. 이 특별한 맛을 경험한 사람들은 소연평도 주민들에게 에누리 나물을 주문하여 나물로 먹는다.
에누리가 연한 순일 때는 맛이 더욱 좋다.
봄이 시작될 무렵 소연평도를 찾아가 에누리(어수리)나물을 권한다. 쌉싸름하고 향긋한 미나리 향의 에누리 맛에 단번에 반하게 될 것이다.
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섬의 맛, 함께 찾아보자.
글 : 김용구 박사(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인천시 섬발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