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대란 예고된 1기 신도시 재건축…분당, 수급 불균형에 정책 혼선

2025.06.01 15:44:52 5면

이주단지 무산에 책임공방…성남시 “대응은 신중히”
2차 정비물량 선정 앞두고 단지 간 경쟁 ‘과열 조짐’

 

분당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이주대란’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약 1만 가구가 넘는 이주 수요가 특정 시기에 집중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를 흡수할 가용 주택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대출보증 제한 등의 조치로 대응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대체 주거지 확보가 늦어지며 시장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0일 발표한 자료에서, 2028~2029년 사이 분당 지역 내 이주 예정 가구가 약 1만 27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반면 해당 기간 공급 가능한 주택은 약 8600가구에 그쳐 4100가구가량의 수급 공백이 발생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분당 내 주택 부족을 넘어, 성남시 전역과 인근 판교·용인·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전세 시장 전반을 압박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한 전세대출 보증 제한 조치를 내놓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섰지만, 실수요자와 조합, 지자체 간의 정책 엇박자가 여전하다.

 

이주 대책 마련의 핵심 주체인 성남시는 현실적인 주거 대안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시는 야탑동 도서관 인근 부지를 이주단지로 제안했지만, 일부 주민들의 임대주택 반대 민원에 부딪혀 계획이 철회됐다. 이후 제안된 3곳의 대체 부지 또한 국토부로부터 “지장물이 많아 신속한 건설이 어렵다”는 사유로 모두 거절됐다.

 

문제는 이주 대책 수립이 단순한 행정 권한이 아닌 지자체장의 법적 의무라는 점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정비사업 추진 시 이주 대책을 포함한 사전 계획 수립을 지자체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남시는 “정비물량과 방식 모두 아직 검토 중이며, 주민 혼선을 막기 위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주 수요가 한 시점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비사업 관리처분 인가 시점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 인가 권한 역시 지자체에 있어, 실질적인 분산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조합 간 이해 충돌 가능성이 높아, 지자체가 단독으로 조정에 나서기엔 정치적 부담도 작지 않다.

 

분당 재건축 사업의 또 다른 분기점은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인 2차 정비물량 선정 방식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공공기여 비율과 주민 동의율 등을 기준으로 선도지구를 선정했으나, 올해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 제안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성남시도 현재 공모 방식과 주민 제안 방식 사이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공모 방식은 평가 기준이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난해처럼 과도한 경쟁과 탈락 단지의 불만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성남시는 이 방식이 채택될 경우, 올해 안에 5년치 물량(약 5만 2000가구)을 일괄 접수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떨어지면 기회는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며 단지 간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반면 주민 제안 방식은 평가 절차 간소화로 신속한 사업 추진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미 높은 공공기여를 이행한 단지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실제로 분당재건축연합회는 38개 단지, 2만 5000가구 규모로 주민 제안 방식을 성남시에 공식 요청한 상황이다.

 

성남시는 “특정 방식을 결정한 바 없다”며, 이달 중 전문가 자문과 주민 의견을 반영해 정비물량 선정 기준과 방식을 확정·공고하겠다고 밝혔다. ‘도시기능 활성화’ 등 부담이 큰 평가 항목은 수용성 제고 차원에서 일부 조정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

 

한편 국토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비 사업시행자 제도’를 도입해 초기 사업 추진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재건축 초기부터 신탁사나 LH 등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해 행정 절차 지연을 줄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 같은 정비사업 촉진책이 이주대책 부실과 맞물릴 경우, 정비사업 전반의 신뢰도와 시장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질적인 주거 수요 분산 방안 없이 사업만 앞당기면, 전세시장 불안과 주민 반발이라는 이중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예고된 공급 병목’으로 진단하며, 이주 수요를 흡수할 구조적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 도시공학과 교수는 “1기 신도시는 유사 시기에 개발된 만큼 정비 수요도 비슷한 시기에 몰리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며 “광역적 주택 공급 계획, 공공임대 유도, 중간 주거지 마련 등 다층적인 이주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정비사업 추진에만 몰두할 경우, 이주 과정에서의 사회적 비용이 시장 전반에 전가될 수 있다”며 “공공기여 형평성과 주거권 보호를 조화시킨 기준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오다경 기자 omotaa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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