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아의 MZ세대 찍어 먹기] 왜 MZ개미는 한국 증시를 떠나는가?

2025.07.08 06:00:00 13면

 

“국장 탈출은 지능 순.”

 

이 문장은 한국 증시에 대한 집단적 냉소와 미국 증시에 대한 매혹을 함께 드러낸다. 주식을 매수하는 일에는 그 기업이 대표하는 가치와 미래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무언의 서약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수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더 큰 이야기의 일부로 위치시킨다.

 

이야기가 대중의 몰입과 충성을 이끌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변화와 완결의 약속, 선명한 드라마와 영웅, 참여와 소속의 감각, 그리고 서사의 유통성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문학과 영화, 브랜드, 정치뿐 아니라 금융 시장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미국 증시는 이 네 가지를 거의 완벽히 충족하는 서사다. AI, 기후 기술, 우주산업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미래 비전이 투자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언젠가 더 큰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집단적 신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테슬라, 엔비디아, AMD 같은 종목은 혁신과 변화를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리사 수는 몰락 직전의 AMD를 재건해 산업의 아이콘이 되었고 젠슨 황은 GPU를 AI의 핵심으로 탈바꿈시켰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를 공언하며 테슬라를 극단적 변동성과 과감함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주가는 급등과 폭락을 거듭하지만, 그 변동성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로 소비된다. “화성 갈 거니까”와 같은 밈을 온라인에서 공유하면서 투자자는 글로벌 혁신의 무대에 조연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차트, 인터뷰, 영웅의 일화는 소셜미디어에서 재가공되어 확산한다. 투자자는 이야기에 동참하며 서사의 일부가 된다.

 

반면 한국 증시는 이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테마주는 짧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신뢰를 마모시키고, 정책 리스크는 예측 가능성을 마비시킨다. “이 시장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체념이 깊게 스며 있다. 중심이 될 만한 인물과 비전은 부재하거나, 오히려 냉소와 피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투자자는 자신이 관객에 머물러 있으며 내부자에 의해 희생당한다는 감각을 떨치기 어렵다. 서사가 사라지는 순간 소속감도 함께 사라진다. 차트와 상징은 밈으로 재생산되지 못하고 투자자들 사이에는 드라마가 아니라 허탈감만 남는다. 수익률의 높음과 낮음 이전에, 이 이야기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더 큰 결핍을 만든다.

 

투자자의 이야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고려하면,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더 나은 서사를 찾아 떠나려는 본능을 드러낸다. 미국 증시는 변화와 완결의 약속, 드라마와 영웅, 참여와 유통의 조건을 충족시키며 투자자를 이야기의 공동 저자로 만든다. 한국 증시는 이들 요소를 거의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동 서사의 경험이 불가능하다.

 

흥행의 조건이 사라진 무대에서 관객은 자연스레 자리를 뜬다. 단순히 수익률이 낮아서가 아니라, 공유할 서사가 없다는 사실이 이탈을 부른다. 이야기의 부재는 시장의 피로와 냉소를 낳는다. 투자라는 서사는 결국 어떤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젊은 투자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좇는 동시에 더 큰 이야기를 찾아 미국 증시로 발길을 옮긴다. 미국 시장에는 변화의 서사와 영웅, 참여의 동력이 흐른다. 수익률의 차이도 분명하지만, 더 깊은 격차는 결국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투자는 언제나 이성적이기보다는 서사적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증시가 끝내 잃은 것이다.

이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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