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재판에서 대법원 최종 무죄를 선고받으며, 10년에 걸친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에 따라 ‘뉴삼성’ 체제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부당합병·회계부정 등 혐의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미래전략실을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우고 합병 비율을 왜곡했다는 혐의로 2020년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며 약 10년간 이어진 사법 족쇄를 털어냈다.
이로써 이 회장의 경영 복귀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영업이익이 4조 6000억 원에 그치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는 경쟁사 SK하이닉스에 뒤쳐진 데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로 관련 매출도 부진을 겪고 있다. 엔비디아가 삼성 제품 ‘H20’ 관련 매출을 회계상 손실 처리한 만큼, 당분간 수주 회복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법 리스크 탓에 사실상 중단됐던 대규모 인수합병(M&A)도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9조 3000억 원에 미국 하만을 인수한 이후 조 단위 M&A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회장이 올해 초 2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부터 하만의 미국 마시모 프리미엄 오디오 사업부(약 5000억 원), 독일 HVAC 기업 플렉트(약 2조 4000억 원),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 등 굵직한 거래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자에 시동을 걸고 있다.
노사 관계 역시 이 회장의 복귀 후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총파업을 벌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여전히 초과이익성과급(OPI) 개선 등을 놓고 사측과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월 임단협 체결 이후 이면 합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조합원 수가 줄었지만,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며 재정비에 나선 상태다.
이 회장은 최근 글로벌 현장을 누비며 경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2월 무죄 판결 이후 일본, 중국 등을 방문했고, 삼성전기는 중국 BYD에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공급을 타진하는 등 사업 성과도 도출했다. 14일에는 미국에서 열린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 후 귀국하며 “열심히 하겠다”는 짧은 한마디로 복귀 의지를 밝혔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다시 가동되며, 반도체 부진 타개는 물론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10년 가까이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삼성도 이제 위기 극복과 경영 정상화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국민연금공단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5억 1000만 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이 회장과 삼성 전·현직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