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의사불벌죄 폐지, 대상 확대 검토할 시점

2025.09.10 06:00:00 13면

가정폭력·스토킹 같은 관계성 범죄 확대 적용 마땅

정부가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반의사불벌죄 폐지 논의를 가정폭력·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에도 확대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다음 뒤늦게 살해·폭행 등 2차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의 중대성과 2차 가해 위험성을 도외시한 반의사불벌죄는 시대에 맞지 않다는 여론이다. 보다 안전한 사회 구축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다음 달 23일부터 시행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더 이상 적용받을 수 없다. 그동안 체불 사업주가 합의나 금전 거래를 명목으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내는 사례가 많아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반의사불벌죄란 형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아니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단순·존속 폭행죄, 과실 상해죄, 단순·존속 협박죄, 명예 훼손죄 등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제도 개선이 가정폭력·스토킹 같은 관계성 범죄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친분을 이용해 합의를 종용하고, 처벌 불원 의사를 빌미로 보복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트폭력은 연인관계라는 특수성에다가 보복 우려 때문에 쉽게 처벌불원 합의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합의 이후에 더 강력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교제폭력 신고 접수 건수는 8만 8394건에 달한다. 지난 2020년 4만 9225건에서 4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신고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과는 달리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3년 기준 교제폭력 가해자 1만 3939명 중 구속된 건 310명(2.2%)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은 교제폭력 관련 법이 미비하거나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제폭력과 관련해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은 스토킹처벌법인데 반복적인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다가 반의사불벌죄도 문제다. 교제폭력의 특성상 보복의 두려움 등으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7월 29일, 대전 서구 괴정동의 한 주택가에서 발생한 끔찍한 전 연인 살해 사건도 피해 여성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4차례나 112신고를 했으나 끝내 공권력이 보호해주지 못했다. 사건 한 달 전 피해자가 가해 남성의 폭행에도 처벌을 원치 않았고 경찰의 안전조치 권유도 거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5일 화성 동탄에서 발생한 납치살인 사건에서 피해자는 지난해 9월 가해자를 신고했다가 뒤늦게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울산 스토킹 살인미수 사건에서도 검찰이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구속 절차를 포기해 논란이 일었다.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연인 또는 가족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반의사불벌죄 등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적극적인 대처를 하기가 어렵다는 게 허점이다.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격리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섬세한 규정이 필요하다.


‘처벌불원 의사 표시 후 일정 기간 이내에는 철회가 가능하도록 법을 바꾸자’는 의견이나 ‘피해자가 술에 취했거나 충격 상태에서 한 처벌불원 의사 표시는 효력을 유보하고, 최소 24시간 이후에만 의사 표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등 제기된 다양한 청원 의견에 눈길이 간다. 끔찍한 범죄를 당하고도 인정에 이끌리거나 보복이 두려워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다가 더 심각한 피해를 입는 일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최소한,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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