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적인 일상] 연극이 끝나고 난 뒤

2025.09.17 06:00:00 13면

 

지난 일요일, 두 달이 넘는 연습 기간을 지나 9일간 10회의 공연을 끝냈다. 공연이 끝나면 언제나 시원섭섭한 감정이 몰려온다. 특히 이번 공연은 30명이 넘는 출연진이 함께한 큰 작품이었다. 무대 위에서 서로를 믿고 내 등을 맡긴 사람들과 이제는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막이 내려오는 순간,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공허가 찾아온다.

 

연습 기간 동안 우리는 매일 무대에서 부딪히며 서로를 알아갔다. 어떤 날은 호흡이 맞아떨어져 희열을 느꼈고, 또 어떤 날은 답답함과 좌절을 맛보았다. 그렇게 웃고 울며 쌓아 올린 장면들이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됐을 때의 감정은 쉽게 말로 옮기기 어렵다. 열 번째 커튼콜을 마친 뒤, 내 안에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야 할까?”

 

돌아보면 이런 감정은 배우로서 늘 반복돼 왔다. 처음에는 그 공백이 두려웠다. 연습의 분주함과 공연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허전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공백이 단지 공허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아마 누구나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시험이나 프로젝트, 큰 행사를 끝냈을 때 찾아오는 묘한 허전함. 준비할 때는 그렇게 바쁘고 치열했는데, 막상 끝나고 나면 하루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그 감정. 우리는 흔히 그런 시간을 ‘휴식’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안에는 휴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지난 노력을 정리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시간. 무대 뒤의 고요가 배우에게 필요하듯, 일상의 고요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요즘 사회는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다. 더 빠른 정보, 더 신속한 배달, 더 즉각적인 결과. 하지만 정작 중요한 깨달음은 이런 속도 속에서 쉽게 오지 않는다. 연극의 막이 오르고 내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삶에도 리듬과 호흡이 필요하다. 공연이 끝난 뒤의 고요가 배우를 성장시키듯, 어떤 일의 끝맺음 뒤에 찾아오는 시간도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 역시 이번 공연을 끝내고 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무대를 만들어갈 것인가?” 아직 답은 없다. 하지만 확신하는 건 하나 있다. 연습과 공연에서 배운 것들, 함께한 사람들과의 기억, 무대 위에서 쌓은 호흡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다음 발걸음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공연이 끝난 뒤의 공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것은 비단 배우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막’을 내리고 또 다른 ‘막’을 준비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지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간다.

 

그러니 막이 내린 뒤 찾아오는 시원섭섭한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그 감정 속에는 우리가 걸어온 길의 흔적이 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 잠시 멈추어 서서, 그 공백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자.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힘을 얻고,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과 공백, 그리고 끝맺음의 시간들은 결국 우리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

 

막이 내린 후에도 연극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삶으로 무대가 옮겨지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바뀔 뿐이다.

문병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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