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지방보조금 심의가 더 이상 ‘심의’라는 이름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시의회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최호섭 안성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최근 안성시 지방보조금관리위원회를 두고 “행정부의 결론을 그대로 추인하는 면피용 위원회로 전락했다”고 직격하며 “시민의 혈세를 다루는 기구가 이대로 방치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제9차 지방보조금관리위원회 심의 결과는 이러한 우려를 그대로 증명한다. 총 489건 중 487건이 가결된 가결률은 무려 99.6%. 이는 위원회가 사업 타당성·재정 여건·우선순위를 놓고 실질적 검토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최 위원장은 “시민 누구라도 ‘이미 합의된 결론을 확인하는 절차 아닌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회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각 부서가 사업 설명을 하고, 예산부서는 이미 ‘부서 협의 결과’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위원회는 이를 그대로 의결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질문은 오가지만,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듯한 구조—바로 이것이 시민이 체감하는 불신의 핵심이다.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은 더욱 뼈아프다. 보조금 신청단체들은 “왜 탈락했는지조차 모른 채 ‘부적격’ 통보만 받는다”며 좌절감을 토로한다. 명확한 평가 기준도, 보완 요구도 없이 통보만 내려오는 방식은 심의라기보다 ‘일방적 판정’에 가깝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그러나 단체들이 느끼는 분노의 방향은 위원회가 아닌 담당부서와 예산부서를 향하고 있다. 이미 부서와 예산부서에서 결론을 내려놓고, 위원회는 그 결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간판 역할만 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결국 “위원회에서 부적격을 줬다”는 말은 행정의 책임을 흐리는 방패막이로 작동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사회단체가 떠안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부적격 판정의 방식 역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기존 사업과 중복’, ‘시범사업 반복’, ‘부서 직접 수행 전환’ 등 형식적 사유만 나열한 채 전액 삭감이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앞서 정책 필요성·지역 현실·누적 성과에 대한 정밀 비교가 충분했는지조차 의문이다. 행정이 시범사업을 본사업으로 키우지 못한 책임을 신청단체에 전가하는 것은 명백한 구조적 오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구조가 고착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의 실종’이다. 어떤 사업이 왜 부적격인지, 누가 최종 판단을 내렸는지 불투명해지고, 행정부 내부에서 정해진 결론은 “위원회 결정”이라는 말 한마디 뒤에 가려진다. 시민과 단체들은 누구에게 기준을 묻고, 어디에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지방보조금관리위원회는 행정부 하부기구가 아니다. 시민의 예산을 대신 감시하고 정책의 타당성을 따지는 독립적 심의기구여야 한다. 심의는 ‘예산 집행의 마지막 견제장치’이지 행정의 면책막이여서는 안 된다.
최호섭 위원장은 “사전결정 구조를 끊고, 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의견을 수정·반영할 권한을 되찾아야 한다”며 “부적격 판정은 통보가 아니라, 명확한 기준·근거·개선 방향까지 포함된 책임 있는 심의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시민의 혈세는 행정부 내부 합의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며 지방보조금 제도의 전면 재정비를 강하게 요구했다.
[ 경기신문 = 정성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