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2011년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에 뉴욕타임스 광고에 실은 문구다. 더 많이 팔기 위해 경쟁하는 시기에 오히려 소비를 멈추라고 제안한 이 메시지는 전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파타고니아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지금 이 소비는 정말 필요한가, 그리고 어떤 가치를 지지하는 선택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 광고는 과잉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 소비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가격이나 유행이 아닌 환경과 지역, 사람의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선택 역시 충분히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이러한 가치소비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남양주에 들어선다.
남양주시는 사회적기업과 장애인·여성기업 등 사회가치 공급자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홍보판매장 ‘가치#’ 조성을 통해 시민의 소비가 곧 지역의 가치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는 주광덕 시장의 공약사항인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온·오프라인 홍보 확대, 온라인 쇼핑몰 입점을 위한 컨설팅 지원, 오프라인 나눔장터 행사 정례화, 공공판로 지원, 오프라인 홍보판매장 조성 등의 일환이기도 하다.
◇ “필요성은 알지만, 살 곳이 없었다”
돌봄, 환경, 취약계층 고용 등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온 사회적경제기업은 공공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시민의 일상에서는 여전히 낯선 존재로 남아 있다. 공공의 역할을 수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생활 속에서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들 기업의 판로는 공공구매나 온라인 판매, 일회성 행사에 집중돼 왔다. 행정과 기업 간 거래는 축적됐지만, 시민의 선택과 경험으로 이어지는 접점은 충분하지 않았다.
‘왜 필요한지는 알겠는데, 정작 무엇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양주시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공공 중심 유통구조를 넘어 시민이 직접 보고,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자 홍보판매장 조성에 나섰다. 그 거점이 바로 정약용도서관 1층에 들어서는 ‘가치#’이다.
‘가치#’은 기존의 전시형·행사형 공간과는 성격이 다르다. 제품을 나열해 놓는 판매장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적인 소비 경험 속에 사회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생활 밀착형 공간을 지향한다.
한편, 그간 여러 지자체에서 운영해 온 홍보 공간은 판매 성과에 무게가 실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매출이 주요 성과지표가 되다 보니, 가치보다는 판매에 유리한 상품 위주로 운영되거나 본래 취지가 흐려지는 한계도 드러났다.
시는 이러한 기존 방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이번 사업을 설계했다. 그저 물건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머물고, 이해하고, 공감한 뒤 구매로 이어지는 흐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가치#’은 사회적기업 제품뿐 아니라 여성기업, 청년기업 등 지역의 다양한 가치 기반 기업 제품을 함께 소개하는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시민과 기업이 일방적인 판매 관계를 넘어 자연스럽게 만나는 접점으로 기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공간에서 시민들은 ‘왜 이 제품이 합리적인 선택인지’를 이해한 뒤 구매하게 된다. 가치를 이유로 한 소비를 특별한 행동이 아닌, 일상의 선택지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 ‘지원’에서 ‘선택’으로…가치 소비의 전환점
‘가치#’의 또 다른 특징은 특정 기업이나 일부 상품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가치 기반 기업 전반을 시민과 연결하는 공공 유통 인프라라는 점이다.
시는 공공시장 중심으로 성장해 온 기업들이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출과 경험이 가능한 채널로 이 공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제품 판매와 함께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기적인 매출보다는 시민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소비 기반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시는 가치 기반 경제의 지속가능성은 행정의 지원 규모보다 ‘시민의 선택이 얼마나 반복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보조금이나 위탁 사업에만 의존하는 구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결국 시민의 소비와 연결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가치#’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책 영역에 머물던 사회적경제를 시민의 일상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맡게 된다. 시민이 자연스럽게 접하고, 이해하고, 선택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가치 기반 경제는 지역의 일상적인 경제 활동으로 자리 잡게 된다.
◇ 시민 접점 인프라·지역에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 구축
시는 가치 기반 기업이 보호의 대상에 머무르기보다, 시민의 선택을 통해 성장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책이나 보조금 중심의 지원만으로는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으며, 결국 일상적인 소비와 연결될 때 비로소 자립 기반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인식 아래 조성되는 홍보판매장 ‘가치#’은 행정 정책의 영역에 머물던 사회적경제를 시민의 생활 속 소비 경험으로 옮겨오는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시는 앞으로 ‘가치#’을 거점으로 가치 기반 기업과 지역 상권, 공공구매, 교육기관, 시민단체 등이 연계된 지역 단위 소비 생태계를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기업에는 안정적인 판로 기반을, 시민에게는 가치와 품질을 함께 고려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지역에는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시는 이번 홍보판매장 조성이 가치 기반 경제를 ‘지원받는 영역’에서 ‘선택받는 구조’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남양주시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우리금융그룹의 디지털 금융 허브 역할을 하게 될 5500억 원 규모의 ‘디지털유니버스’ 유치에 이어, 올해 6월 6000억 원 규모의 카카오 AI 기반 데이터센터 ‘디지털 허브’ 유치, 그리고 이달 5일에는 8500억 원 규모의 신한금융그룹 AI인피니티 센터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 경기신문 = 이화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