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눈 밖에 나면 ‘컷’···시스템 공천 위에 있는 사람들(上)

2026.05.03 20:00:00 1면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 입김에 ‘풀뿌리 민주주의’ 실종
검증 대신 ‘충성’ 우선···시스템은 거들뿐, 사실상 사천
낙하산 공천에 밀려난 현역·신인들···밀실 공천의 민낯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도 예외 없이 공천 과정에서 ‘사천(私薦)’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지방의원(기초·광역의원) 후보 공천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만 유권자들에게는 지방의원 공천·선거는 물론 입후보자에 대한 관심도가 낮고 각 정당들 또한 쇄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이같은 논란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기신문은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의 허술함이 드러난 사례를 살펴보고 제도 보완 등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上 지방의원 공천 실상은…시스템 대신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 ‘픽’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불문하고 각 정당들은 ‘공정’과 ‘투명’을 전제로 한 시스템 공천을 내걸며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는 공천 기준을 강화하고 객관적인 지표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실제 수면 아래의 실상은 당의 구호와 사뭇 다르다.

 

각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는 형식적인 틀만 갖추고 있을 뿐 이른바 지역구 ‘맹주’인 지역위원장, 당협위원장이 지방의원 후보들의 공천 여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권력 구조 속에서 각 정당이 내세우는 시스템 공천은 사실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의원들 사이에서 후보로서 자질을 갖추는 것보다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의 눈에 잘 드는 것이 공천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관여 안 했다더니 도당은 ‘위원장 선택’···책임 떠넘기기에 우는 후보들

 

사천 논란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 고질병이다. 최근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한 현역 기초의원의 사례는 허술한 공천 과정을 보여준다.

 

A 의원은 재선 시의원 도전을 위해 당이 요구한 당원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고, 이번 선거에서 새롭게 도입된 기초의원 자격시험인 기초자격평가(PPAT) 응시까지 마치며 상대 후보와의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앞서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해당 교육 이수 여부에 따라 후보에게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A 의원에게 돌아온 것은 ‘컷오프’였다.

 

납득할 수 없는 결과에 A 의원이 해당 지역구 당협위원장에게 직접 사유를 묻자 “나는 이번 공천에 관여한 바가 전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공천을 총괄하는 도당 공관위의 설명은 정반대였다. 도당 측은 A 의원의 항의에 “컷오프 결정은 당협위원장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당협위원장과 도당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이른바 ‘핑퐁 게임’을 벌이는 사이, A 의원은 그동안 몸 담았던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가’ 번은 위원장 측근 차지···‘깜깜이’ 공천에 실종된 경선 원칙

 

국민의힘 기초의원 예비후보 B 씨 역시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의해 컷오프가 결정된 사례다.

 

B 씨가 입후보한 도내 한 지역구는 B 씨까지 총 4명이 공천을 신청하며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다.

 

이곳은 기초의원 2인 선거구였으나 이번에도 경선은 없었다. 별다른 경선 과정도 없이 당협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후보가 ‘가’ 번을, 현역 의원이 ‘나’ 번을 받게 됐다.

 

즉시 B 씨는 도당에 컷오프 사유를 물었으나, 도당은 “당협위원장의 선택”이라는 답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바로 옆 지역구에서도 공관위가 객관적 심사나 지역 여론 조사 대신 당협위원장의 주관적 선택으로 현역 기초의원이 배제됐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당 기여도나 정책적 전문성보다는 위원장의 ‘심복’이나 ‘측근’을 우선시하는 사천 논란이 공천 공정성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면접장서 대놓고 “지역위원장과 소통했나”···충성도가 곧 기준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역위원장의 ‘입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기초의회 비례대표 공천 면접을 본 장애인 후보 C 씨는 면접장에서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C 씨가 면접관으로부터 들은 첫 질문은 “지역위원장과 소통은 하고 후보 신청을 한 것이냐”였다. 후보 자질을 검증해야 하는 공천 면접에서 정책 역량이나 비전 대신 지역위원장과의 관계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앞서 C 씨는 지역구 지역위원장과 수차례 면담을 신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이를 면접관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총 7명이 신청한 비례대표 신청자 중 유일하게 C 씨만이 경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C 씨는 별다른 사유 없이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재심을 신청했으나 이마저도 기각됐다. 이후 그는 가까스로 지역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더 황당무계한 말을 듣게 된다.

 

지역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가리켜 “D 후보의 표가 분산될 여지가 있어 한 명의 남자 후보를 (컷오프)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을 내놨다는 것이다. C 씨의 사례는 지역위원장과의 ‘교감’이 공천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수행비서’로 전락하는 지방의회···제도적 개선 시급

 

이처럼 지역위원장과 당협위원장의 개인적 선택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불공정 공천의 피해는 결국 지역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위원장의 충성스러운 심복들이 공천을 독점하게 되면 정작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참신한 인재들은 정치권 진입 장벽에 부딪혀 좌절할 수밖에 없다.

 

도민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해야 할 지방의원이 지역 국회의원의 심부름을 수행하거나 당론에만 무조건 따르는 ‘거수기’로 전락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다.

 

지역 정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정당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라며 “상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한 기초의회 의원 공천 시스템은 지역의 총책임자로 볼 수 있는 지역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의 권한이 막강할 수밖에 없어 어찌 보면 당연한 문제”라고 말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과거 민주화 이전의 정치는 유력 인사에게 아부하거나 줄을 대는 사천이 전부였다. 이를 탈피해 정당의 정체성과 객관적 지표로 후보를 평가하는 ‘시스템 공천’이 도입됐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완벽하게 통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여전히 유력 정치인의 입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다 보니 사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탈락하고 점수조차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후보자들이 삭발이나 단식, 탈당까지 하지만 상황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정치권력을 ‘국민을 위한 봉사의 권한’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로 인식하는 과거의 봉건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우리 정치권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한주희 기자 ]

한주희 jhha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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