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에 헌법을 개정해 6·3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안 투표를 하려던 시도가 8일 무산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을 재상정하려고 했으나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예고하면서 재상정 방침을 철회했다.
우 의장은 본회의 개의 직후 “어떻게든 39년 만에 개헌을 무산시키지 않기 위해 오늘 다시 본회의를 열었다”며 “그런데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응답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의사진행이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의장은 헌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며 “오는 6월 3일 개헌 국민투표 시행을 위한 절차는 오늘로써 중단됐다”고 선언했다.
국회는 전날 본회의에서 개헌안 표결을 시도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함에 따라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한 투표 불성립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이에 우 의장과 민주당은 이날 재상정 방침을 밝혔으나 국민의힘은 개헌안을 상정할 경우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겠다고 맞섰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하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전날처럼 의결 정족수인 재적 286명의 3분의 2인 191명을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재상정 방침 철회를 선택한 것이다.
우 의장은 이날 개헌안 좌초 책임을 놓고 국민의힘을 강력 비판했다.
그는 “여야 간에 얼마든지 합의가 가능한, 사실상 내용의 반대가 전혀 없는 개헌안을 놓고도 개헌의 문을 열지 못했다”며 “정략과 억지 주장을 끌어들여 39년 만에 개헌을 무산시킨 국민의힘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가까스로 만든 개헌 기회를 걷어찼을 뿐 아니라 공당으로서 국민께 한 약속을 실천하는 책임도 같이 걷어찬 것”이라며 “불법계엄을 반성한다, 반대한다는 소리는 다 어디갔냐”고 질타했다.
특히 “불법계엄을 꿈도 못 꾸게 하는 개헌을 필리버스터까지 걸면서 이러고도 법원이 내란우두머리로 선고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했다는 세간의 의심과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냐”며 “만약 20∼30년 후에 이런 불법 내란이 또 벌어진다면 국민의힘은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개헌안은 지방선거일에 맞춰 개헌안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우 의장의 제안에 따라 추진됐으며, 지난달 3일 국민의힘을 제외한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개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여야 원내 6당과 무소속 의원 등 187명이 개헌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개헌안 내용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선거용 정략’이라고 비판하며 당론 반대 입장을 정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개헌안 발의에는 동참했지만 여당에 “공소취소 특검법안 철회 먼저“를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개헌안은 헌법 전문에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의 민주 이념을 계승함을 명시했다.
또 계엄에 대한 국회의 승인권을 도입하고, 국회의 계엄해제요구권을 계엄해제권으로 강화하는 등 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 강화를 담았고, 국가의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 의무도 포함했다.
우 의장은 “국민투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선거인단에 등록한 재외국민, 관계기관에도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국회의장으로서 죄송하다. 매우 아쉽다”고 했다.
우 의장은 당초 이날 개헌안과 함께 비쟁점법안 50건의 상정도 예고했으나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신청에 따라 이 역시 철회하고 개의 17분 만에 산회를 선포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차라리 국민투표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면 본인들에게 선거에 불리하니 반대한다고 솔직히 말하라”며 “국민은 선거 유불리와 당리당략에 매몰돼 국가의 미래를 가로막는 국민의힘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공소취소 특검으로 삼권분립을 파괴하겠다고 하면서 헌법을 짓밟고 있는데 헌법을 100번이고 고치면 뭐하나”라며 “있는 헌법부터 지키기 바란다”며 직격했다.
이어 “지금 민주당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독재의 길, 내란의 길, 반자유 반민주의 길”이라며 “여야 합의 없는 독재 개헌은 기필코 국민과 함께 끝까지 막겠다고 강조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내고 “헌법개정안 본회의 처리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끝내 무산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강 수석대변인은 “국민들은 국가의 안위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개헌마저 반대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우실 것”이라며 “국민께 약속했던 개헌 논의가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된다. 후반기 국회에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개헌 논의를 이어가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주시길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 “개헌은 단지 제도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다. 극한 대립과 정쟁을 넘어 협의 정치와 국민 통합, 사회적 화합을 복원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청와대는 앞으로도 시대적 과제인 개헌 논의를 국민과 함께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 경기신문 = 김재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