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보약] 슬픔을 통과하는 방법

2026.05.19 06:00:00 15면

 

몇 년전에 알게 된 어떤 어른에게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닿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모친상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님께 이곳의 날씨와 안부를 전하고, 그립고 보고 싶다고 말하는 글들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고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문장 사이사이에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읽는 동안 가슴이 저릿했고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나는 연락을 멈추고 한동안 상실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몇 년 사이 죽음의 소식을 접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최근들어 명절마다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계속 세상을 떠나셨다, 멀리서는 전쟁과 재난에서의 사망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죽음은 멀리 있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 가까이에 앉아 있다.

 

죽음 이후의 일을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생에서의 만남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소중한 존재를 잃는 슬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리학의 애도 연구는 슬픔을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과정으로 본다. 건강한 애도는 고인을 잊는 일이 아니라, 고인과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는 일에 가깝다. 처음에는 사진을 보거나 이름을 부르는 일조차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회피가 길어질수록 슬픔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안전한 속도로 기억을 마주하고,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고, 남은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

 

편지를 쓰는 일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미 답장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꼭 현실의 답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보고 싶다”, “미안했다”, “고마웠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글로 꺼내는 동안, 엉켜 있던 감정은 조금씩 형태를 얻는다. 말해지지 못한 슬픔은 몸에 남지만, 표현된 슬픔은 흐르기 시작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슬픔과 일상을 오가는 일이다. 애도 연구에서는 이를 ‘이중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날은 고인을 떠올리며 울고, 어떤 날은 밥을 먹고 장을 보고 일을 한다. 울다가 웃는다고 해서 사랑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하루를 살아낸다고 해서 고인을 잊은 것도 아니다. 슬픔에 머무는 시간과 삶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 그것이 애도의 자연스러운 리듬이다.

 

그러니 슬픈 사람에게 “이제 그만 잊어야지”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리워해도 괜찮고,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편이 낫다.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회복이 아니라 안전한 동행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속도로 울고 말하고 침묵할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애도법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슬픔의 시간을 품으며 통과하는 그 지인분의 SNS 풍경 위로 AKMU의 노래가 조용히 흐르는 듯하다. 기쁨 뒤에 찾아오는 슬픔도 아름다운 마음의 일부이니, 겁내지 말고 마주 앉으라는 그 노랫말처럼, 애도란 상실을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마음 안에 조심스레 자리를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순간 슬픔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햇살 같은 선율이 함께 하길 바란다.

배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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