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의 책상풍경 세상풍경]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

2026.05.20 06:00:00 15면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계절, 소중한 이들에게 미뤄 두었던 안부를 전하고 기억 속의 고마운 이들을 떠올리며, 가족과 사회 속에 함께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몇 년 동안 미국에 살았던 적이 있다. 새로 살게 될 집에 처음 들어가던 날, 현관 앞에는 환영 카드와 작은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낯선 땅에서의 첫날, 그 작은 환대는 그곳에 사는 내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옆집 도로시아 아주머니는 달걀을 빌리러 오기도 하고, 빵을 만들어 가져다주기도 하며 종종 집에 들르곤 했다. 핑계 삼아 얼마간이라도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웃의 온기가 느껴지곤 했다.

 

존 할아버지와 팻 할머니는 추수감사절마다 우리 가족을 초대해 명절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의 특별한 공연 날에는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서 당신 손주들 보듯 예뻐해 주곤 했다. 아이들이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도 기억난다. 몇 번이나 넘어지던 아이가 마침내 혼자 힘으로 바퀴를 굴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 순간, 뒤에서 우리보다 더 큰 소리로 환호를 보내 준 이들도 이웃집 가족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었지만 타국에서 살아가던 그 시절 우리 삶의 한 부분을 함께 나눈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낯선 땅에서의 고단한 삶을 견디는 데에 누군가 건네는 작은 관심과 환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끼게 해준 이들이다. 반드시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조용히 손을 내밀어 주며, 일상의 순간들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 주는 시간 속에서 가족 같은 관계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혈연 중심의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유지되어 왔다. 같은 성을 쓰고 같은 공간에 살며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가족과 친족이 삶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법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07년 100만 명, 2016년 200만 명에 이어 2025년 3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약 5.4%에 해당한다. 외국인 유학생 수도 이미 30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여전히 외국인 유학생과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숫자를 늘리는 것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조화를 이루며 환대 속에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타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외롭고 팍팍하다. 언어도 문화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일상의 순간을 혼자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식사를 나누고, 늦은 귀가를 걱정해 주고, 아플 때 병원도 같이 가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울타리가 될 누군가가 필요하다. 적어도 그런 사회적 기반이 시스템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5월의 캠퍼스를 거닐며, 웃고 떠드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서로 연결되고 의지하며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것의 의미, 낯선 이를 환대하고 연대하는 것의 의미, 그런 안전망이 잘 마련된 사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그런 미래에 대해.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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