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차 화재 예방을 명분으로 매년 수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화재의 핵심 원인인 배터리 열폭주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충전기 교체 사업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존에 정상 작동하던 충전기를 ‘화재 예방형 스마트 충전기’로 조기 교체하는 사례가 늘면서 충전기 사업자들이 보조금과 교체 수요를 등에 업고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소방청과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발생한 전기차 화재의 대부분은 리튬이온 배터리 내부 문제에서 비롯된다. 내부 결함, 제조 과정 미세 불량, 충격에 의한 셀 단락 등이 배터리 온도를 급격히 올려 1000℃ 이상의 열폭주를 유발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진압이 어렵고 재발화 가능성까지 높아 피해가 커진다.
충전 중 화재 사례가 많아 보이지만, 이는 ‘충전기를 꽂아둔 상태’와 실제 충전 중을 구분하지 않은 통계 왜곡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 원인의 대부분은 배터리”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언론과 여론에서는 충전기 안전 문제가 과도하게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기차 화재 대책으로 스마트 제어 충전기(화재 예방형 충전기) 보급을 확대하고 있고, 해당 제품으로 교체 시 보조금이 지원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화재 불안이 커지자 일부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지자체에서 멀쩡하게 잘 작동하는 기존 충전기를 조기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안전 강화’라는 명분 아래 교체를 강하게 권유하거나, 보조금을 활용해 사실상 교체를 유도하는 사례다.
충전기 사업자(CPO)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신형 스마트 충전기는 가격이 기존 제품보다 높고, 설치·유지보수 계약까지 따라오면서 사업자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사업자 수도 대폭 늘어났다. 2020년에 16개사에 불과했던 전기차 충전기 사업자 수는 2025년 기준 약 300여 개에 달한다. 결국 충전기 사업자만 이득을 보는 ‘기회주의 시장’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화재 불안 심리를 이용해 과도한 교체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실제로 환경부의 스마트 충전기 보조금 사업이 실효성 논란을 빚은 적도 있다.
시스템 통신 표준 및 호환성 문제 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충전인프라는 매년 확충되는 추세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20년 6만 4000여 기였던 충전기는 2024년 41만 4000여 기로 5년 간 약 6.5배 증가했다. 이는 동 기간 전기차 등록 대수 증가폭인 약 5.1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경기도는 2020년 7597기에서 2024년 11만2384기로 약 14.8배 급증하며 전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충전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2년 1035억 원, 2023년 2725억 원, 2024년 3715억 원, 2025년 6187억 원을 충전시설 설치 지원 예산으로 편성했다.
문제는 전기차 화재 주원인이 배터리인 데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스마트 충전기 지원 사업을 올해에도 추진한다는 점이다.
전기차 차주들은 “배터리 결함이나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충전기만 바꾸면 화재가 사라질 것처럼 진실을 숨기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미 설치된 충전기를 굳이 교체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면, 정책이 안전이 아닌 교체 사업 촉진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다.
평택 고덕신도시 한 아파트 주민 A씨는 “우리 단지 충전기는 점검에서도 이상이 없었는데, 화재 이슈로 아파트에서 교체를 강행했다. 비용은 결국 주민 부담인데, 진짜 필요한 건가 싶다”고 토로했다.
반면, 정부는 “과충전을 방지해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데다 충전사업자 측은 “스마트 충전기로 교체하면 화재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적극 홍보 중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새로운 장비나 시설 설치로 수익을 보기 위해 사실을 호도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 같은 행태는 장기적으로 전기차 보급을 더디게 하고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 해결책으로 전고체 배터리 도입, 고도화된 BMS, AI 기반 화재 예측 등 배터리 기술 개선과 제조사 책임 강화를 강조한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와 탄소중립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윤원섭 성균관대 미래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제조사는 셀의 미세 결함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자동차 회사도 안전을 제어,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 경기신문 = 최화철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