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경기도의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인 가운데, 경기연구원이 고속도로 인프라를 활용한 송배전 아이디어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이른바 ‘경기도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이다. 이 구상은 특히 송전선로 건설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할 수 있다는 예측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반도체와 AI 산업의 성패가 전력 공급에 달려 있는 만큼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제안이라는 평가다.
경기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 ‘반도체 시대의 전력난, 고속도로 위에서 답을 찾다’에서 고속도로는 이미 국가가 확보해 둔 토지이기 때문에 사유지 보상이나 주민 갈등 없이 지하에 송배전 관로를 바로 설치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연구보고서는 서해안·평택시흥 고속도로를 서해안 간척지(시화·화옹·평택호)에서 생산될 약 3GW 규모의 대규모 태양광 전력을 반도체 산업이 밀집한 경기 남부로 끌어오는 최단 경로로 분석했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평균 13년가량 걸리던 기존 송전선로 건설 기간을 5~7년 이상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어,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되는 용인 반도체 공장의 전력 공급 시차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고속도로는 전기를 나르는 송전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무공해 발전소’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약 840㎞에 달하는 도내 고속도로 비탈면과 성토부, 방음벽 등 유휴부지를 활용하면 588㎿ 규모의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연간 전력은 773GWh로, 중소도시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방대한 양으로 추산됐다.
이와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와 나들목 거점마다 4㎿급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는 전략도 제시했다. 낮 동안 태양광으로 생산한 잉여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전력 소비가 많은 밤에 공급하면 기존 배전선로가 수용할 수 있는 태양광 전력 한계가 14㎿에서 18㎿로 대폭 늘어나, 대규모 송전망이 완성되기 전이라도 전력 공급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구상은 지역 주민과 발전 수익을 나누는 ‘상생형 모델’로 설계됐다. 도민이나 지역 주민이 사업비의 4% 이상을 투자하는 주민참여형 방식으로, 태양광 발전으로 얻은 수익을 주민들에게 정기적인 배당금으로 돌려주는 구조다. 이렇게 추진할 경우 법적으로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데다, 그동안 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던 주민들이 사업의 주주이자 이해관계자로 바뀌게 돼 입지 확보, 수익 창출, 주민 수용성이라는 ‘1석 3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원은 이를 위해 경기도와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 간 3자 협력체계 구축을 주문했다. 우선 서해안 간척지에서 생산한 태양광 전력을 연결하는 ‘서화성 집전 피더망’을 시범 조성한 뒤 경기 남부 전역과 전국 고속도로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전국에 펼쳐진 고속도로망을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연계하면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경기연구원의 구상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필두로 경기도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2050년 약 28만 5000GWh로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시설만큼이나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보내주는 송전망, 즉 ‘전기길’을 확보하는 일이 긴급한 국가적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거대한 송전탑과 송전선로를 새로 건설하려면 주민 반대와 토지 보상 문제 등으로 입지 선정에만 1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기연구원의 ‘고속도로망 활용’ 아이디어는 주민 갈등과 토지 보상 문제 등 기존 난제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할 만하다. 경기도는 물론 정부 관계 부처와 관련 기관들도 심층적인 분석과 사업계획 구체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이제 그 길을 어떻게 열 것인지가 남은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