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진 칼럼] 추다르크, 협치의 시험대에 서다

2026.09.10 06:00:00 15면

 

78대 78의 기억과 달라진 출발선

2022년 6월 2일 새벽 5시 30분을 조금 넘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개표 상황을 지켜보다 패색이 짙어 잠깐 눈을 붙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판은 뒤집혀 있었다. 개표율 96.6%에서 극적인 역전이 나왔고, 아침 7시를 넘겨서야 가까스로 승리를 확정했다. 0.15%포인트 차이의 초박빙 승부 끝에 출범한 '김동연호'의 경기도정은 만만치 않은 정치력을 요구받았다.


김 전 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의회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았다. 도의회 전체 의석 156석은 민주당 78석, 국민의힘 78석으로 정확히 갈렸다. 어느 한쪽도 제 뜻대로 밀어붙일 수 없는 구조였다. 의회가 정상 운영되지 못했고, 상임위원회 안건 심사 과정에서 여야가 맞서는 일이 잦았다. 표결에서 찬반이 같은 가부동수가 나오면서 처리가 미뤄지는 일도 반복됐다.


김 전 지사의 대표 복지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예술인 기회소득'이 대표적이다. 관련 조례 상정 여부를 놓고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표결했지만 결과는 8대 8이었다. 국민의힘 의원 8명이 반대하고 민주당 의원 8명이 찬성했다. 조례는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했었다. 김 전 지사에게 도의회는 임기 내내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번에 도백(道伯)의 자리에 오른 추미애 지사의 출발선은 사뭇 다르다. 6·3 지방선거에서 추 지사는 양향자 국민의힘 후보를 개표 초반부터 앞서며 15.67%포인트, 107만201표 차이로 당선됐다.

 

도지사 선거의 압승은 도의회 선거에서도 이어졌다. 전체 의석 167석은  더불어민주당 144석, 국민의힘 22석, 조국혁신당 1석으로 구성됐다. 완전한 여대야소다. 민주당 소속의 헌정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인 추 지사는 의회 숫자만 놓고 보면 안정적으로 도정을 끌고 갈 여건을 갖췄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기 어려웠던 전임 도정과는 처지가 다르다. 

 

협치의 첫 시험대 경기남부광역철도

추 지사의 취임 일성은 포용과 소통이었다. 협치를 통해 책임있는 도정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취임후 31개 시장·군수와 ‘정책협력위원회’를 구성했다. 도지사 옛공관인 도담소에서 여야 도의원들을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다. 소통하며 도정 현안을 풀겠다고 했다. 이견이 있다면 논의를 거쳐 답을 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난 4일 도의회 첫 도정질문을 마친 뒤 "도의회와 집행부는 도민의 삶을 위해 함께 해법을 만들어가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언제든 찾아달라"고 했다.

 

역대 도지사들도 상생과 협치를 도정 기본 원칙으로 내세웠다. 남경필 전 지사는 야당에 부지사 추천권까지 내준 연정(연합정치)을 시도했고, 이재명 전 지사는 소통협치국을 신설했다. 김동연 전 지사는 여야정 협의체를 꾸려 도의회와 협치의 틀을 만들었다.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정치적 이해와 진영 논리에 따라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추 지사의 협치가 처음 시험받을 곳은 경기남부광역철도가 될 듯하다. 도민 1호 청원으로 올라온 이 사업은 서울 송파에서 성남·용인·수원을 거쳐 화성까지 50.7㎞를 잇는 5조 원 규모의 복선전철 사업이다. 이는 추 지사의 “수도권 30분 출근 시대를 열겠다”는 교통 혁신 공약과도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반영부터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넘어야 할 절차가 적지 않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신상진 성남시장, 이상일 용인시장, 이재준 수원시장, 정명근 화성시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당적은 달랐다. 그래도 경기남부 광역철도 얘기에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노선이 지나는 지역의 여야 국회의원들도 뜻을 함께 했다. 추 지사는 도지사 후보 때부터 경기남부 광역철도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취임 뒤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을 직접 만나 사업 필요성을 설명했다. 적어도 출발 단계에서는 경기도와 관련 시·군 그리고 해당 지역 정치권의 입장도 크게 엇갈리지 않았다.


이런 사업은 대개 밑그림을 그릴 때보다 선을 긋기 시작할 때 시끄러워진다. 어디를 지나갈지, 역은 어느 동네에 둘지 얘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사업비를 누가 더 낼지, 어느 구간을 먼저 할지도 마찬가지다. 국가계획이나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 들어가면 이제 다른 지역 사업과 순서까지 겨뤄야 한다.


주민 입장에서는 역 하나, 나들목 하나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이 달라지고 개발 기대가 붙는다. 집값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시장·군수와 지역구 의원들이 이런 요구에 등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한목소리를 내던 지자체들이 노선도를 펼쳐놓는 순간부터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도 그래서다.

 

추다르크의 경기도 정치

추 지사가 이번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을 무렵이다. 필자가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추다르크'는 추미애의 성 '추'와 잔다르크를 합친 말이다. 당연히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 

"죽잖아요. 싫은데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프랑스를 구한 영웅이지만 종교재판에 넘겨져 19살에 생을 마감한 잔다르크의 마지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짧게 주고받은 말이었지만 진솔함이 묻어 있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추 지사에게는 지금도 추다르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1997년 대선 당시 야권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을 때 붙은 별명이다.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이 잔다르크를 연상시킨다는 데서 나왔다. 정치판에서 얻은 별명인 만큼 이유도 분명하다. 피하지 않고 맞붙고, 한 번 정한 방향은 쉽게 꺾지 않는 강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그런 기질은 추 지사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정은 결이 다르다. 31개 시·군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같은 당 소속 단체장과 의원들도 지역 현안 앞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여당과 야당이라는 구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느 지역이 무엇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어제 한편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반대편에 서기도 한다. 그럴 때 다시 마주 앉게 하고, 한쪽에는 양보를 구하고 다른 쪽에는 받아들일 만한 대안을 내놓는 것이 도지사의 몫이다. 추 지사의 협치는 이제 출발선에 섰다. 성패를 말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지금의 소통 기조를 끝까지 유지한다면 추다르크에 이어 ‘협치 도지사’라는 별명이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른다.

최인진 injin0717@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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