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린다. 연락처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르는 번호들이 휴대폰 화면에 뜬다. 나는 망설임 없이 수신 거부를 누른다. 언제부턴가 받고 싶지 않은 전화가 더 많이 온다. 한가한 시간에 걸려 오는 전화는 그나마 괜찮은데 바쁘고 복잡한 상황에 걸려 오는 전화는 불편하다. 특히 운전 중이거나 통화 중에 걸려 오는 전화는 더 그렇다.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받아보면 역시나,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제품 홍보나 설문 조사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내 이름을 듣는 일은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폰 화면에 저장되지 않은 연락처가 뜨면 무조건 거르게 된다.
모르는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또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낯선 번호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는 실제로 피해야 할 위험한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구별하기 어려워지면서 쉽게 피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화벨이 달갑지 않은 소리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소한 이야기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메시지나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더 많아서 전화 통화를 할 일이 많지 않다. 효율을 택하다 보니 어느새 연결의 방식이 건조해졌고, 관계가 깊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도 함께 커진 것 같다.
SNS를 통해 낯선 이들과 소통하고 자신을 알리는 일은 쉬워졌다. 그렇게 연결의 통로는 넓어졌는데 정작 서로에게 닿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더 편리하게 연결되기 위해 더 많은 연결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받지 않은 전화 중에는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반가운 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락하지 못하고 지낸 사이에 바뀐 친구의 전화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낯선 번호였을지 모른다. 화면에 잠깐 떴다가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진. 거르는 것도, 걸러지는 것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일이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차단하고 거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걸러지는 것들 속에서 놓쳐버린 게 있을까 봐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릴없이 전화기를 붙들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곁에 몇이나 있을까.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또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줄 여유가 우리에게 얼마나 남아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집안에 전화벨이 울리면 혹시 내게 걸려 온 전화일까 싶어 서로 달려가 받으려고 했었다. 전화기 앞에서 친구의 전화를 기다리고, 통화를 오래 하다가 부모님께 혼났던 일이 아득한 옛날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잠든 밤 전화기를 몰래 방에 들고 들어가 이불 속에서 소곤거리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그때는 전화가 설레는 것이었다. 누가 걸어올지 모르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반가웠고, 지금은 누구인지 몰라서 두렵다.
내일은 휴대폰 화면에 뜨는 번호가 깜박깜박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면 좋겠다. 가끔은 모르는 번호라도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