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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노마드] 소통과 교역 문명의 발원지, 레바논에 평화를

 

최근 레바논 남부의 한 마을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예수상을 망치로 훼손하는 사진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스라엘 군과 네타냐후 총리는 서방 기독교권의 여론 악화를 의식해 즉각 병사를 규탄하며 진화에 나섰다.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는 동안 더디게 반응하던 국제사회는, 성상의 파괴 앞에서 즉각적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인간의 죽음보다 상징의 훼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아이러니는, 오늘의 전쟁이 드러내는 불편한 자화상이다.

 

우리에게 레바논은 흔히 '중동의 화약고' 혹은 이슬람 무장 단체의 근거지라는 굴절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편견의 안경을 벗고 바라본 레바논은 인류 교역 문명의 위대한 발원지이자 원조 '글로벌 노마드'들의 땅이다. 3000년 전 고대 해상 무역을 제패했던 페니키아인들은 이곳에서 지중해를 누비며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다. 그들은 기존 셈족 문자를 22개 자음으로 간결하게 체계화해 지중해 전역에 전파했고, 이것이 오늘날 알파벳의 기원이 됐다. 레바논의 항구도시 비블로스(Byblos)는 이집트산 파피루스의 중계 집산지로 번성했는데, 그리스인들이 이곳을 통해 들여온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byblos'라 부르면서 훗날 성경을 뜻하는 '바이블(Bible)'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됐다. 페니키아 상인들은 광활한 지중해 교역망을 통해 화폐 경제를 각지에 확산시킨 주역이기도 했다. 인류는 레바논에 언어와 지혜와 상업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역사적 토양 위에서 레바논은 중동에서 가장 독특한 '코스모폴리탄' 국가로 성장했다.레바논은 중동에서 보기 드문 다종교·다문화 국가로 자리 잡았다. 마론파 기독교를 비롯해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이 공존하는 권력 분점 구조는 오랜 균형의 산물이었다. 대통령은 기독교인,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는 체제는 갈등 속에서도 공존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단지 건물만이 아니다. 수 세기 동안 이어온 공존의 질서와 일상의 삶터가 함께 파괴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를 ‘이스라엘 대 헤즈볼라’라는 단순한 구도로 이해하려 한다. 물론 헤즈볼라가 레바논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포탄 아래에서 생명을 잃는 이들의 대부분은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 가족과 식탁을 나누던 이웃들이 하루아침에 폐허 속에서 삶을 잃고 있다. 교역과 연결의 상징이던 땅이 지금은 단절과 파괴의 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정치적 계산 속에서 정작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은 사라지고 있다. 포탄은 종교를 구분하지 않으며, 무너진 건물은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을 함께 짓밟는다.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앞세우지만, 그 끝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만이 남는다.

 

온 세상이 하나로 연결된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시선은 이 지워진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국 역시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늘의 번영을 일궈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연대해야 할 대상은 특정 진영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일상을 빼앗긴 평범한 사람들이다.

 

부서진 예수상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에 더 크게 분노하고, 무엇을 더 오래 외면해왔는가. 인류를 연결했던 교역과 문명의 땅에 다시 필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공존의 의지다. 레바논이 다시금 세계를 잇는 평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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