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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장률 반전 뒤에 가려진 '고용 한파'의 그림자

  • 등록 2026.05.15 06:00:00
  • 15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3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6%포인트 상향한 2.5%로 조정했다. JP모건, 씨티, 노무라 등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들도 잇달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은 주요 22개국 중 당당히 1위를 기록하며 ‘깜짝 실적’을 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가히 독보적인 질주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폭발적인 반도체 수출 증가가 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한 고유가 및 경제 불확실성이라는 악재를 덮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적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서민 경제의 근간인 고용 시장은 ‘성장 없는 고용’을 넘어 ‘고용을 배반하는 성장’이라는 역설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1분기 성장률 초과 달성의 일등 공신은 단연 반도체다. AI(인공지능) 열풍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거시 지표를 견인했다. 그러나 문제는 첨단 기술 중심의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기술적 고립’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AI 반도체 산업은 자본 집약적이고 자동화 비중이 높아, 매출이 수조 원 단위로 뛰어도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신규 인력 창출 효과는 과거 전통 제조업에 비해 현저히 낮다.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소수 엘리트에게는 기회의 장이지만, 대다수 구직자에게는 ‘그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일자리의 양과 질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특히 미래 세대인 청년층의 고용 절벽은 국가적 재앙 수준이다. 청년 취업자 수는 19만 4000명이나 급감했고, 청년 고용률은 무려 24개월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제조업 취업자 역시 22개월째 감소 중이다. 반도체 수출이 전례 없는 호황이라는데, 정작 일자리의 요람인 제조업 현장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기묘한 상황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고용 통계의 ‘착시 현상’을 노인 일자리가 떠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고용률 수치를 지탱하는 주역은 60세 이상의 고령층 취업자들이다. 은퇴 후 생계를 위해 저임금 단기 일자리에 내몰린 고령층이 늘어나는 것을 두고 고용 시장이 견조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청년들은 갈 곳을 잃고,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는 증발하며, 그 빈자리를 정부 예산이 투입된 노인 일자리가 채우는 구조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KDI의 보고서는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수출 호조에 취해 고용 구조의 질적 하락을 방치한다면, 결국 내수 침체와 잠재성장률 저하라는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다. AI와 첨단 산업의 성장이 낙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라면,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첨단 산업에서 발생한 이익이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이나 신산업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 혁파와 세제 혜택을 설계해야 한다.

 

또한, 반도체 산업 내에서도 중소·중견 장비 업체들의 생태계를 강화해 일자리의 저변을 넓히는 전략이 시급하다.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는 단순히 숫자를 늘린다고 생기지 않는다. 신산업에 걸맞은 교육 제도 개편과 더불어, 기업들이 사람을 뽑고 싶게 만드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 및 안전망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성장률 2.5%라는 숫자는 자축의 근거가 아니라, 고용 구조를 수술하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의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지 않는 성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정부와 기업은 반도체 호황의 그늘 아래서 신음하는 청년들과 제조업 현장의 목소리를 직시해야 한다. 경제 성장의 온기가 반도체 공장 담벼락을 넘어 골목 상권과 청년들의 책상까지 전달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 경제는 진정한 의미의 반등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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