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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 피하지 않은 ‘추다르크’, 경기도 새로운 도약 이끌다

판사·6선 의원·당대표·장관 거친 ‘책임 정치’의 아이콘
가시밭길 마다않고 제주4·3·검찰개혁 정면 돌파한 상징
“경기도는 대한민국 미래”…입법·사법·행정 역량 총집결

 

1420만 경기도민의 선택은 단호했고 명확했다. 대한민국 최대 지방정부이자 경제·사회의 중심지인 경기도의 새로운 수장으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선출됐다. 경기지역 정가와 도민들은 입법, 사법, 행정을 두루 거친 6선 정치인의 등장이 향후 경기도정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 가져올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추 당선인은 당선 확정 직후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자 미래”라며 “도민의 선택을 무겁게 받들어 이재명 정부와 함께 경기도에서 대한민국 정상화를 완성하고, 도민의 삶을 실제 성과로 바꾸겠다”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그가 걸어온 30년 정치 인생은 한마디로 ‘가시밭길을 피하지 않은 책임의 여정’이었다. 판사 시절부터 6선 국회의원, 여당 당대표, 법무부 장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헌정사의 굵직한 변곡점마다 중심에 섰던 인물, 추미애. 첫 여성 경기도지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그가 걸어온 길과 그가 제시하는 경기도의 미래를 집중 조명한다.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 법복을 입고 권력에 맞서다

 

추미애 당선인의 삶은 화려한 이력과 달리 낮은 곳에서 출발했다. 1958년 경북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평범하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은 그에게 걸림돌이 아닌 세상을 더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움의 기회였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단련하는 계기가 됐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사법연수원 14기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다.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비롯해 춘천·인천·전주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한 시절, 그는 이미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도 오직 양심과 법 원칙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고개 숙이지 않았고, 압박 속에서도 신념에 따라 영장 발부를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법정은 그에게 국가 권력의 정당한 행사 범위와 법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자문하는 공간이었다. ‘법은 강자를 위한 방패가 아니라 약자를 위한 울타리여야 한다’는 사법 정의의 원칙은 이때 확립됐으며, 훗날 그의 정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이념이 됐다. 

 

 

◇김대중의 발탁과 ‘추다르크’의 탄생, 지역주의의 벽을 깨다

 

안정된 판사의 길을 걷던 그를 현실 정치로 이끈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그는 당시 여성 정치인이 지역구에서 자리를 잡기 극히 어려웠던 풍토를 깨고 당당히 승리했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정치의 기본을 몸소 체득한 순간이었다.

 

그의 정치 여정 중 가장 돋보이는 대목 중 하나는 낡은 지역주의와의 정면 승부다. 대구 출신이라는 배경을 가졌음에도 민주개혁 진영의 길을 선택한 것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난 신념의 결과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및 총재 비서실장을 지내며 본격적인 개혁의 기수 역할을 했다.

 

특히 대구 등 영남권 전역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던 행보는 그에게 ‘추다르크’라는 독보적인 별칭을 안겨줬다. 불리한 싸움일수록, 대립의 장벽이 높을수록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그의 돌파력에 국민이 응답한 결과였다.

 

 

◇역사적 침묵을 깨우다… 제주4·3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초선 의원 시절부터 추 당선인은 국가폭력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앞장섰다. 오랜 세월 금기시됐던 ‘제주4·3사건’의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린 주역이 바로 그다.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던 시절, 수형인명부를 직접 확인해 억울한 희생의 기록들을 찾아냈고 이를 제도와 정치의 영역으로 공론화했다.

 

그가 대표발의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국가가 외면해 온 불행한 역사를 국회의 책임으로 전환한 역사적 이정표가 됐다. 이 노력은 훗날 그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에도 이어져 억울한 수형인들의 재심, 명예회복, 실질적인 배·보상으로 결실을 맺으며 사법 정의를 실천하는 끈기를 보여줬다.

 

 

◇촛불혁명의 중심에서 정권교체를 완수하고, 검찰개혁의 포화를 견디다

 

민주당계 정당 역사에서 추 당선인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을 책임져왔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국민통합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민주정부 수립의 핵심 기틀을 다졌다.

 

특히 2016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된 직후 맞이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에서의 리더십은 단연 돋보였다. 광장의 촛불 민심을 정당 정치의 책임으로 흡수해 헌정질서 회복과 2017년 대선 승리를 견인했다.

 

이어 치러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까지 임기 내 모든 전국 단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민주당 역사상 최초로 임기를 완벽하게 마친 당대표로 기록되며 고질적인 계파 갈등을 종식하고 수권정당으로서의 체질 개선을 완수했다.

 

이후 그는 정치적 영예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적 과제였던 검찰개혁을 위해 의전서열이 더 낮은 법무부 장관직을 수락했다. 제67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라는 거대한 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거센 저항과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당시 그가 남긴 ‘정치검찰의 권력화에 대한 뼈아픈 경고’는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화되면서, 사법 정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마다치 않았던 그의 뚝심과 선견지명을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6선 법사위원장에서 이제 1420만 경기도민의 삶 속으로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여의도에 복귀한 그는 채해병 사건 규명을 위한 국방위 활동, 윤석열 내란 국정조사 특위 위원, 민주당 내란진상조사단장 등을 맡으며 격동의 중심에 섰다. 나아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맡아, 과거 법무부 장관 시절 온몸으로 열어젖혔던 사법 개혁의 과제들을 마침내 제도와 법률로써 최종 완성해 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여의도를 넘어 경기도청으로 향한다. 판사로서 법의 원칙을, 국회의원과 법사위원장으로서 제도를, 당대표로서 선거 전략을, 법무부 장관으로서 거대한 행정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을 토대로 경기도가 직면한 복잡한 현안을 실질적으로 풀어낼 과제를 안게 됐다. 

 

중앙정부와의 조율, 국회와의 협치, 그리고 경기 지역 31개 시군의 균형 발전이라는 거대한 숙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다. ‘말만 앞세우지 않고 정책과 예산, 구체적인 제도의 성과로 증명하겠다’는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 가시밭길을 마다치 않고 언제나 결과를 만들어냈던 그의 30년 책임 정치가 이제 경기도의 새로운 도약과 도민들의 삶을 바꾸는 위대한 여정으로 시작되고 있다.

 

[ 경기신문 = 한주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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