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과 인연을 맺은 지 16년쯤 됐습니다. 그 시작은 장모님이였죠.”
가수 이정선은 용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렸다. 그에게 용인은 단순히 거주지가 아닌 삶의 터전이자 인연의 공간이다.
지난 4월 용인특례시 홍보대사로 위촉된 이정선은 7일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모님 덕분에 보정동에서 상현동, 다시 보정동까지 오며 16년의 세월을 용인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존경하고 사랑했던 장모님께서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분이 남긴 뜻을 생각하며 지금도 용인을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선은 최근 들어 ‘용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오랜 시간 편안한 삶의 공간으로만 여겼던 용인이 이제는 자신이 무언가를 돌려줘야 할 도시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용인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도시”라며 “처음 용인과 인연을 맺었던 그 따뜻한 감성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가진 재능은 음악이다. 남은 생 동안 작사·작곡이라는 달란트를 최대한 시민들과 나누고 싶다”며 “용인 없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하다. 불가능하다”고 웃었다.
이정선이라는 이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하나의 장르로 통한다.
1970년대 포크 음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는 ‘섬소년’을 비롯해 ‘외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오직 사랑뿐’, ‘나들이’,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특히 김광석이 다시 불러 널리 알려진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은 지금도 세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다.
그의 음악 인생은 늘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포크그룹 해바라기를 결성해 활동했고, 이후 ‘이정선과 풍선’, ‘신촌블루스’ 등을 통해 포크와 블루스, 록을 넘나들며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또 20년 가까이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최근에는 5인조 음악팀 ‘통소리’를 꾸려 크로마하프와 리코더 등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악기들을 활용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소리를 찾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음악가로서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음악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타 입문자들에게 ‘기타 바이블’로 불리는 ‘이정선의 기타교실' 역시 그의 이름을 상징하는 대표 저작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읽히며 수많은 음악인의 첫 교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그의 새로운 무대는 용인이다. 이정선 씨는 “음악인으로서, 또 용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인의 매력을 알리고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 경기신문 = 최정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