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수업 시간에 손을 번쩍 드는 아이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채우는 아이들이 있다. 요즘 교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전과 다른 묘한 변화가 보인다. 언젠가부터 수줍게 손을 들었다 내리던 평범한 아이들의 자리가 조용히 비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발표를 싫어하게 되는 것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성급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K자 양극화가 보인다. 경제 지표에서 시작된 이 말이 어느새 교실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로 올라가는 선과 아래로 내려가는 선, 그 사이 중간층은 점점 얇아진다. 학력 격차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속도와 양상이 달라졌다. 상위권 아이들은 학원과 과외, 온라인 강의를 종횡무진하며 실력을 쌓아가고, 하위권 아이들은 기초 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채 학교 공부에서 멀어진다. 문제는 이 두 그룹 사이를 채워야 할 중간층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이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한 반 안에 교과서를 혼자 읽고 이해하는 아이와 문장 자체를 해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공존한다. 예전이라면 조금만 더 잡아주면 따라오겠다고 생각했을 아이들이 어느 방향으로든 급격히 쏠리는 느낌이다. 중간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라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보면, 그 빈자리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공백이 회복되지 않은 탓도 있고, 사교육 시장의 팽창이 격차를 벌려놓은 탓도 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상승해 왔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사이의 간극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벌어진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공교육이 평균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 모두가 같은 교과서로, 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수업은 양극단의 아이들 모두에게 맞지 않는다. 상위권에게는 지루하고, 하위권에게는 따라가기 버겁다. 결국 중간 언저리를 겨냥한 수업이 중간층 붕괴와 함께 허공을 맴돌게 된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단순히 학력 차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층은 사회를 떠받치는 완충지대다. 교실 안의 중간층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래 사회의 완충지대가 좁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 말이 통하고, 이해하며, 협력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와 경험을 나눌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비슷한 수준에서 함께 틀리고, 함께 깨달으며 성장하는 경험이야말로 교실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인데, 그 경험의 터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해법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교실 수준에서라도 아이들의 출발선을 섬세하게 살피고, 한 명 한 명의 속도에 맞춘 피드백을 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교사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큰 짐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기초학력 지원 인력을 늘리며,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공교육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중간이 살아 있는 교실이 건강한 교실이다. 손을 들까 말까 망설이는 그 아이들, 조용히 노력하고 있는 그 아이들이 다시 교실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그 자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