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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편의 조각 속 마주한 민낯…배우 정애리가 바라본 '더 마더' 안느

낯선 인물이지만, 한편으론 공감되기도 하는 캐릭터
많은 대샤량, 혼란스러운 감정선 세밀한 표현 위해 연습 매진
단순한 '엄마' 이야기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이야기

 

안개가 자욱한 문 너머로 한 여자가 걸어간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시간도, 스스로를 옭아매던 집착과 불안도 그 문 앞에 내려둔 채다. 연극 '더 마더' 속 안느의 마지막 장면은 끝이 아닌 시작에 가깝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출연진실에서 만난 배우 정애리는 공연을 앞두고 분주한 와중에도 안느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냈다.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흔들었던 인물, 그리고 무대 밖의 삶에도 작은 질문을 남긴 작품에 대해 들어봤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차분함을 잃지 않은 정애리는 이번 작품 속 주인공 안느를 "우리 모두의 엄마"라고 표현했다.

 

"'더 마더'의 안느는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전업주부예요. 그런데 자녀가 독립하고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큰 혼란을 겪죠. 조금 더 생활적인 인물이지만 결국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에요."

 

정애리는 안느가 낯설게 다가온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끝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지 묻자 그는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느처럼 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인물도 아니에요. 평생을 가족에게 바쳐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안느는 자신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이에요."

 

안느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지만 동시에 깊은 고립감 속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정애리는 반복되는 장면 구조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감각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안에는 비슷한 장면들이 계속 반복돼요. '이게 현실일까?', '어떤 게 진실일까?'라는 혼란이 있죠. 배우 입장에서도 긴장되는 작품이었어요. 평소에도 대사가 많은 역할을 많이 했지만 안느는 특히 생활 대사들이 많아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는 안느를 지나치게 무겁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안느에게도 귀엽고 밝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슷해 보이는 장면이라도 매 장면의 온도와 결을 다르게 가져가려고 노력했죠."

 

'더 마더'는 관객에게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직접 혼란과 불안을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정애리는 "극 전체에서 안느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어쩌면 안느에게 편안한 현실은 이미 지나간 과거일지도 몰라요. 아이들이 곁에 있고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들 말이죠. 안느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 대중에게 따뜻하고 단단한 '어머니' 이미지로 기억돼 온 정애리에게 안느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중년 여배우라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어요. 드라마에서는 한 가지 면만 보여주는 인물이 많지만 안느는 여러 모습이 공존하거든요. 어려웠지만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실제 연습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는 두 달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작품에 쏟아부었다고 털어놨다.

 

"다른 일은 거의 하지 못했어요. 연습을 하면서도 대사가 헷갈릴 정도였죠. 지금은 관객들이 함께 공감해 주고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정애리는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연극 무대 때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극이라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먼저 대본을 받았고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선택하게 됐죠."

 

안느는 결국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그렇다면 배우 정애리는 어떻게 자신의 중심을 지켜왔을까.

 

"저는 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캐릭터에 몰입하는 정애리와 현장에 있는 정애리를 구분하는 편이죠. 일이 끝나면 집에 있는 것도 좋아하고요.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심심하지 않아요."

 

오랜 시간 이어온 국제 구호 활동 역시 배우로서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삶을 많이 보게 돼요. 배우는 결국 사람을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저를 더 넓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극 말미 안느는 안개가 자욱한 문 너머로 걸어간다. 정애리는 그 순간을 '해방'으로 해석했다.

 

"'그게 다 뭘 위해서였지? 이제는 나를 사랑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라고 봐요. 그래서 마지막에 팔을 조금 들어 올리는 거예요. 쇠사슬처럼 묶여 있던 강박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죠. 물론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이제는 비로소 자기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바라본 안느의 비극은 결코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무심함, '엄마가 뭘 알아'라는 사회적 시선, 가족 안에서의 소외감이 모두 쌓여 안느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안느는 분명 가족을 사랑했고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꽃이 피는 시기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준비하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 정애리는 '더 마더'를 단순히 엄마의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이야기예요. 평생 바친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 원하는 보상을 얻지 못할 수도 있죠. 안느는 그런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인물을 연기해 온 그에게 안느는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

 

"'더 마더'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묻거든요. '최선을 다했는가.'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안느 역시 그런 작품이에요."

 

마지막으로 공연을 모두 마친 지금, 정애리가 안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조용히 답했다.

 

"이제 너를 사랑해. 그동안 정말 잘 살았어."

 

안느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 경기신문 = 서혜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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