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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커피 오디세이] 커피의 천하통일

 

이탈리아 커피의 아버지들

 

16~17세기 베네치아로 들어 간 커피는 토리노, 로마, 나폴리, 피렌체 등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 커피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오늘날 이탈리아 성인 96.5%가 커피 없이 하루를 살 수 없을 정도로 중독 시켰다.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하나의 신앙이자 국가 문화의 소중한 전통으로 뿌리를 내렸다.

 

여기에는 공로자들이 있다. 비즈니스에 뛰어난 베네치아 무역상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이전에 숨은 커피의 아버지들이 있다.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프로스페로 알피니(Prospero Alpini)가 바로 그 사람이다. 1570년경 이탈리아에 커피를 소개한 그는 베네치아 서쪽 파도바 출신이다. 영사의 주치의 자격으로 알피니는 이집트 카이로에 파견됐다. 그곳에서 약 3년간 머물면서 동식물을 연구하고, 다양한 물질의 치료 용도를 기록하던 중 이집트인들이 커피콩을 볶아 달인 물을 와인 대신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향에 돌아와 그는 이 지식을 전파했고, 그 덕에 사람들은 이 음료를 잘 음미하고 즐길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피에트로 델라 발레(Pietro Della Valle)다. 위대한 로마 음악학자겸 작가, 그리고 모험가인 그는 17세기 전반 중동을 여행하며 지역의 풍습과 생활 방식을 연구했다. 그는 자주 나폴리 친구 스키파노에게 자신이 경험한 이국 생활을 편지에 담아 보고했다. 스키파노는 이 편지들을 공개했고 나폴리 사람들은 처음으로 커피를 알게 됐다.

 

바그다드 여인과 결혼해 중동생활을 만끽하던 델라 발레는 12년 후 나폴리로 돌아와 정착했다. 그때 무슬림들이 식사 후에 마시는 ‘카흐베’라는 음료에 대한 글을 직접 써 내려갔다. 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슬람교에서는 금지된 술 대신 커피를 마시는 데, 이는 훌륭한 대안이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 검은 액체를 달인 후 이맘들은 끊임없이 작은 도자기 그릇에 부어 마신다. 이 새로운 마법의 음료는 사람들을 밤에도 깨어 있게 하고, 마시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각성시키는 효능이 있다.”

 

 

나폴리, 최초의 바리스타 등장

 

델라 발레를 통해 나폴리에 커피가 소개 됐지만 이 도시에 커피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1768년 페르디난도 4세의 아내가 돼 나폴리에 온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에 의해서였다. 그녀는 비엔나에서 가져온 커피 문화를 나폴리 귀족들에게 전파했고 커피 의식을 한층 고양시키기 위해 1771년 카세르타 왕궁에서 호화로운 무도회를 개최했다. 이때 흰 재킷과 모자를 쓴 최초의 바리스타가 등장해 커피를 서빙했다. 카롤리나 왕비는 커피와 함께 키프페를(kipferl)을 곁들여 먹는 문화를 궁중에 정착시켰다. 키프페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즐겨 먹는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로 크림과 블랙 체리가 들어 있다. 프랑스 크루아상의 원조 격인 이 케이크는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커피와 함께 전형적인 아침 식사로 자리매김 했다.

 

1800년대에 들어 이 음료는 서민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이때 지금은 전설이 된 행상인들이 커피 용기, 우유, 컵, 설탕을 보자기에 싸 어깨에 메고 나폴리 시내를 돌며 손님들을 찾아 커피를 팔았다. 이는 나폴리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고속 커피 에스프레소

 

산업혁명기로 들어서면서 커피는 대중화 됐다. 그런데 커피 한 잔을 만드는 일은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물을 끓여 갈아 놓은 원두를 거르는 일은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업소들은 손님에게 커피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800년대 후반, 여러 발명가들이 커피를 맛있고 더 빠르게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이때 이탈리아어로 ‘압착’ 또는 ‘짜낸’이라는 뜻의 ‘에스프레소’를 빠르게 추출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1884년 토리노에서 안젤로 모리온도(Angelo Moriondo)가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어 특허를 받고 커피 제조 및 소비 형식에 혁명을 일으켰다. 증기와 끓는 물을 결합시켜 커피를 추출하는 이 기계는 에스프레소의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에스프레소는 압력을 가해 추출하는 방식뿐 아니라 속도라는 개념까지 아우르며 바쁜 도시 생활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제품이 돼 갔다. 정확한 양과 짧은 추출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이 커피는 마치 그 이름을 딴 고속 열차처럼 20세기 초를 상징하는 음료가 됐다.

 

그 후 밀라노의 엔지니어 루이지 베제라가 에스프레소의 개념을 진정으로 혁신시켰다. 그는 고압의 뜨거운 물을 곱게 간 커피 가루에 통과시켜 한 번에 한 잔씩 추출할 수 있도록 기계를 개량했다. 이탈리아의 카페와 바(bar)는 사람들이 판매대 주위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즐기려고 잠시 들르는 사교의 중심지가 됐다.

 

 

이탈리아의 보시 카페 소스페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 이탈리아는 카페에서 인심이 나는 모양이다. ‘카페 소스페소(caffè sospeso)’, 즉 선불 커피의 존재가 이를 말한다. 노동자와 같이 돈 없는 사람들도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베푸는 인정미가 있다. 1900년 대 초 나폴리에서 시작된 익명의 이 연대 행위는 누군가가 커피 값을 미리 지불하는 방식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커피 두 잔을 사서 한 잔은 자신이 마시고, 다른 한 잔은 남겨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커피를 즐길 수 있게 기회를 선사했다.

 

이 전통은 빈곤층이 많았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크게 번성했다. 전후 경제 성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했지만 최근 다시 부활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사회 연대 운동을 반영하듯, 선불 커피는 다시 한 번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작은 동네 카페에서 프렌차이즈 카페까지 다양한 곳에서 연대 의식을 고취하고 매출을 늘리는 방법으로 ‘카페 소스페소’가 확산되고 있다. 이 전통은 코비드 19 때 ‘선불 장보기’와 같은 다른 형태의 상호 지원 제도를 탄생시켰다. ‘선불 장보기’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낯선 이들을 위해 식료품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마련하는 일종의 보시(布施)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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