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유난히 어려운 사람이 있다. 좋게 생각하려고 애쓰고, 이해하려고 할수록 더 멀게 느껴지는 사람. 왜 나는 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그 또한 나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과 기억과 상처가 있을 것이다. 살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물론 성격이나 하는 일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횟수는 다르겠지만 살아가며 만나는 인연의 기본값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애쓰지 않아도 나를 깊이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다해도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이 많다고 해서 이해가 깊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쉬워질 줄 알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었으니 웬만한 일은 다 이해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가 있다. 더는 애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서로의 욕망이 다름에서 오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유를 찾아보아도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쉬운 방법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쁨도, 아무런 배움도, 주지 못하는 관계를 더는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포기할 수 없어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위해, 별자리를 만들고, 신화를 만들고, 운명을 얘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방식이 작동할 때가 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지면 떠올려보곤 하는 습관이다. 나는 가끔 전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는데, 그것은 믿음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상상해 보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그러다가 생각을 바꾼다. 갚아야 할 것이 꼭 잘못 때문만은 아닐 테니까. 혹시,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생에서 내게 큰 은혜를 베푼 사람은 아니었을까, 라고.
다음 생에서 어떤 모습으로 오더라도 내가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상상 말이다. 그리고 그 약속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그는 내게 어려운 모습으로 온 것은 아닐까. 다정한 친구로 오는 것은 쉽다. 고마운 인연으로 오는 것도 너무 쉬운 일이다. 그러니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와서 내가 그를 견디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다고 해서 미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조금 더 기다려 보게 된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고, 운명이나 인연 같은 말을 떠올리는 것 같다. 나에게 전생은 그런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빌려오는 상상력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받거나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면 나는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내가 잊고 있는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그 덕분에 오늘도 누군가를 조금 더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