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언론’이라고 할 때의 ‘언론’은 ‘엄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유형’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엄밀한 의미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는 기술하는 표지들을 완전히 진술함으로써 그것을 일의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 때뿐이다. 그러한 정의는 개념의 전체 표지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충족될 때에만 그리고 그 때에는 늘 이 대상이 개념에 포섭될 수 있음, 즉 그것으로 지시된 대상의 범주에 해당함을 뜻한다.(라렌츠-카나리스, 이동진 역, 법학방법론, 50면). 반면 ‘유형을 기술할 때 쓰인 표지들 또는 그중 몇몇’은 전부 다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특히 서로 다른 정도로 존재할 수 있다…. 특정 사안이 유형에 귀속되는지 여부는 그것이 통상 보는 모든 표지들을 포함하는지 여부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오히려 “전형적으로” 보는 표지들이 사안에 “전체적으로” 유형의 현상에 상응할 정도의 수와 강도로 존재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위의 책, 56-57면).‘언론’을 기술할 때 쓰이는 표지들이 있다. 언론이라고 하면 전형적으로 발견될 것으로 기대되는 특징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특징들 중 어떤 것들이 없더라도 여전히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어법에서 ‘언론’은 개념이 아니라 유형이고, 나아가 ‘규범적 이념유형’인 것 같다. ‘규범적 이념유형’은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모범” 또는 “원형”이다. … 이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로는 실현될 수 없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추구하여야 하는 모범 또는 목표상인 것이다. (위의 책, 386-387면) 사람들은 어떤 언론은 ‘참언론’이라고 하고 어떤 언론은 ‘유사언론’이라고 하고 어떤 언론은 “언론도 아니라”고 하면서 ‘언론’을 규범적 이념유형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현행 언론중재법의 ‘언론’에 대한 정의에는 유형적 사고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언론중재법은 신문, 방송,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인터넷신문으로 등록, 신고, 허가되어야 언론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법과 상식의 괴리가 발생한다. 자체적으로 취재도 하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정규적으로 보도도 하며, 여론에 강력한 영향력도 행사하는 행위자 라면 ‘언론’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언론의 전형적인 특징들 또는 표지들이 ‘언론’이라는 유형에 상응할 정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언론중재법은 언론을 신문, 방송,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인터넷신문 등으로 열거할 뿐이다. 그 결과 오늘날 언론법의 규율이 필요한 것 같은 행위자들은 모두 “뉴미디어”일 뿐 언론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빠져나가고 없다. 언론중재법의 언론 개념을 개정해, 취재와 보도 기능을 하며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이나 ‘채널’이나 ‘행위자’는 ‘언론’으로 포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둘 필요가 있다.
‘입법유형’(개별사례해결에 주목하는 입법과 일반조항의 성격을 갖는 입법 사이의 긴장관계 사이에서의 선택지)은 도식적으로 ‘열거적 개별사례해결’, ‘예시적 개별사례해결’, ‘일반조항과 결합한 예시적 개별사례해결’, ‘일반조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 (크라머, 최준규 역, 법학방법론, 57면). 이처럼 ‘예시적 개별 사안 해법과 일반조항을 결합’시키는 것이 입법기술적 측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이러한 결합은 법치국가적 안정성 요청과 미래를 향한 법정립 요청을 가장 잘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책, 54-55면). 즉 ‘언론’을 신문, 방송,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인터넷사업자 등으로 예시하면서도, 기능적으로 그에 준하는 행위자를 언론으로 포섭할 수 있는 일반조항을 추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