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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범의 미디어비평] 지방 소멸을 외치면서 지방 분산 흔드는 언론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서 있다. 수도권 집중은 더 이상 지역 불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이다. 국가균형발전은 특정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이다. 지방에 산업과 일자리를 분산시키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됐다.

 

그런데 정작 언론은 균형발전이라는 큰 흐름보다 갈등과 정쟁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최근 호남권 반도체 투자 논란을 둘러싼 보도는 우리 언론의 프레임이 얼마나 선택적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 노동조합 설문조사 보도다. 삼성전자 노조가 호남권 반도체 투자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고용 안정과 기존 사업장의 이해를 우선하는 조직이다. 투자에 따른 생산기지 이전과 인력 재배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은 노조의 당연한 역할이다.

 

문제는 노조가 아니라 언론이다. 과거 같았으면 노조가 기업의 투자 방향에 의견을 내는 것 자체를 두고 '경영권 간섭'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을 언론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노조원 84% 반대'라는 숫자를 전면에 내세워 호남권 반도체 투자가 내부에서도 심각한 저항에 부딪힌 것처럼 기사화했다.

 

결국 언론이 존중한 것은 노조의 권리가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서사였다. 평소에는 경영권 침해라며 비판하던 노조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지방 분산 정책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일관된 원칙보다 필요한 순간에만 노조를 소환한 것이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지방 투자는 갈등 비용이 크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언론이 갈등을 보도한 것이 아니라 갈등 프레임을 만들어낸 셈이다.

 

정작 언론이 주목해야 할 것은 지방의 생존 전략이었다. 광주와 전남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행정통합에 합의하며 대규모 국가 지원을 이끌어냈다. 반도체 투자 역시 단순한 공장 유치가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사업이다. 언론은 지역이 어떤 전략으로 투자 여건을 마련했고, 국가 경쟁력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했어야 했다.

 

오히려 이러한 본질을 짚은 것은 지역 언론이었다. 대구일보는 대구·경북이 반도체 투자 경쟁에서 뒤처진 이유를 '지방 분산이라는 흐름을 읽지 못한 전략 실패'라고 진단했다. 특정 지역을 탓하기보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지역 경쟁력을 성찰한 보도였다.

 

반면 중앙 언론은 정치권의 강성 발언을 받아쓰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안철수 의원의 호남권 반도체 투자 비판은 크게 보도됐지만, 과거 그가 "호남을 미래 산업의 중심축으로 만들겠다"고 했던 발언과 현재의 주장을 비교하며 정치인의 말에 대한 책임을 검증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예외적으로 JTBC만이 과거와 현재를 대조하며 정치인의 일관성을 검증했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즘의 역할이다.

 

언론은 지방 소멸을 걱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방 분산 정책이 추진될 때 갈등과 장애 요인만 부각하고 정치적 공방만 확대한다면 결국 스스로 균형발전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지금 언론에 필요한 것은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프레임을 바꾸는 확증편향이 아니다. 지역의 생존 전략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정치인의 말에 책임을 묻는 균형 잡힌 저널리즘이다. 그것이 지방 소멸 시대 언론이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공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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