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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전시] 두 번의 서른아홉, 뒤틀린 시간에서 다시 찾은 ‘나’…이정태 ‘39, 40’

오는 29일까지 진솔한 이야기 담은 개인전 선봬
그림 그린 것 아닌 ‘설계’…새로운 시선, 감각 선사

 

나무판 위를 가로지르는 선은 분명 곡선이다. 그러나 관람객이 몇 걸음 옮겨 특정한 지점에 서는 순간, 휘어 있던 선은 반듯한 수직선으로 모습을 바꾼다. 같은 작품을 바라보고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실험공간 UZ가 이정태 개인전 ‘39, 40’을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이정태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설계’한다. 조소를 전공한 그는 나무를 휘고, 관람 각도에 따라 선의 형태가 달라 보이도록 작품의 구조를 짠다. 수 차례 나무를 대보고 머릿속으로 선의 움직임을 그리며 작품 안에서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곡률을 찾아낸다.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과 관람객의 움직임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작업은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한 사람에게 수직선으로 보이는 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곡선으로 보이지만, 어느 쪽도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서 있는 자리로 직접 옮겨갔을 때 비로소 그가 본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정태에게 소통은 서로 같은 것을 보는 일이 아니라, 몇 걸음을 내디뎌 타인의 자리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에 가깝다.

 

전시 제목 ‘39, 40’은 이정태가 서른아홉과 마흔의 경계에서 겪은 시간을 담고 있다. 특히 ‘서른아홉을 두 번 살았다’는 경험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정권 교체 이후 이른바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면서 나이를 세는 기준이 달라졌고, 마흔을 앞두고 있던 그는 다시 서른아홉이 됐다.

 

 

이정태에게 마흔은 단순히 숫자가 하나 늘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중년으로 들어서는 일종의 입구이자, 새로운 시기를 맞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문턱을 앞두고 시간이 갑자기 뒤로 밀려나자, 그는 “마치 발령을 기다리다 ‘아직 자리가 없으니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을 들은 듯한 기분에 놓였다”고 설명했다.

 

법과 제도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나이가 다시 서른아홉이 된 경험은 이정태에게 시간이 고정된 질서가 아닐 수 있다는 감각을 남겼다. 반듯하게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었던 시간이 어느 순간 접히고 늘어나며 뒤틀린 것이다. 이는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곡선이 수직선으로 바뀌는 그의 작품과도 맞닿아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같은 시간과 대상도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서른아홉을 통과하는 동안 이정태는 삶을 뒤흔든 일들도 연이어 겪었다. 가까운 친구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는 암으로 투병하던 장인을 떠나보냈다. 고인의 휴대전화와 사진, 각종 서류를 정리하면서 그는 죽음을 단순한 슬픔이 아닌 ‘부재’로 실감했다. 마음속에 존재하던 한 사람의 방을 비우고 불을 끈 뒤,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하는 감각이었다.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는 처음 마주하는 힘듦도 겪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과정이라 여기며 견뎠지만, 상실이 반복되면서 자신이 조금씩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에 하나씩 구멍이 뚫리고, 미처 막기도 전에 물이 차오르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시도한 끝에 아이가 태어났고, 그의 삶과 작업에는 이전과 다른 기준이 생겼다.

 

 

기존 작품이 하나의 판으로 구성됐다면 이번 신작에는 두 개의 판이 등장한다. 서로 다른 수직과 수평을 지닌 두 덩어리는 비틀리고 기울어진 채 하나의 새로운 중심을 이룬다. 작가 자신에게서 갈라져 나온 또 하나의 생명, 아이의 탄생 이후 새롭게 세워진 삶의 좌표를 떠올리게 한다.

 

이정태는 이번 전시에서 화려한 색채도 상당 부분 걷어냈다. 한때 아트페어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강렬한 색을 사용했던 그는 작업을 잠시 멈춘 뒤 자신의 내면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는 “시장의 흐름과 타인의 기대를 따라가며 느꼈던 설명하기 어려운 결핍이 작품 안에 정작 자신의 이야기가 빠져 있었기 때문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 ‘화이트 필드’는 노란색을 띠지만 제목은 ‘하얀 들판’을 뜻한다. 특정 위치에 서면 선 사이로 흰 바탕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더 그릴 수 있음에도 일부러 남겨둔 여백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채워 넣는 대신 관람객 각자가 그곳에서 자신의 삶과 기억을 펼쳐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39, 40’은 두 번의 서른아홉을 지나 마흔에 도착한 이정태의 사적인 기록이자, 시간과 삶을 바라보는 각자의 위치를 되묻는 전시다. 휘어진 선이 수직으로 바뀌는 순간, 관람객은 마주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시간과 기준 역시 어디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 ‘39, 40’은 오는 29일까지 계속된다.

 

[ 경기신문 = 서혜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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