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는 오랫동안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전달돼 왔다. 하지만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다면 증언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기억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고, 누군가는 가르쳐야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기록을 찾아 읽고 질문해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는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기억을 이어갈 책임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다.
8월 14일 기림의날 기념일이 과거의 피해를 추모하는 하루에 머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존자의 증언이 멈추더라도 기록과 교육,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면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더 크다. 피해자가 없는 시대, 그 기억을 개인과 일부 시민사회의 노력에만 맡길 것인가. 아니면 국가와 지방정부,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할 것인가.
‘포스트 생존자 시대’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에 경기신문은 ‘증언이 사라진 자리, 누가 기억할 것인가’를 주제로 생존 피해자 감소와 증언의 공백, 경기도 31개 시군 기억사업 전수조사 등을 총 4차례에 걸쳐 기획보도한다. [편집자주]
“전쟁이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그러나 그 기억을 직접 말해줄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역사는 남을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8월 14일)을 앞둔 11일 오후 2시 광주시 ‘나눔의 집’에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이 마주 앉았다. 나눔의집에서 진행된 한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 ‘동해바다 건너 평화 만들기’에 참여한 한일 학생들이다.
피해자의 증언을 직접 들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지금, 이들이 선택한 것은 과거를 외면하거나 대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기록을 직접 보고 서로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교과서에서 위안부 역사를 배웠지만 오늘은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나눔의 집을 둘러본 하남고등학교 2학년 김모 군의 학생의 소감이다.
이날 행사에는 하남고 학생 13명과 일본 자유의숲고등학교 학생 26명, 양국 교사와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행사의 시작은 강연이 아닌 음악이었다.
이현송 연주자는 ‘무엇이 남는가’를 주제로 마림바 독주를 선보였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고, 그것을 다음 세대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음악으로 질문했다.
공연을 마친 학생들은 나눔의 집 부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관람했다. 교과서 속 몇 줄의 역사가 피해자 개개인의 삶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관람 이후에는 제2역사관 2층 추모관에서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함께 앉아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했다.
하남고 1학년 이모 군은 “일본 학생들과 함께 위안부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며 “앞으로도 일본 학생들과 이런 문제를 교류할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 학생들의 반응도 이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자세히 알게 됐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일본 자유의숲고 1학년 사토 군은 “오늘 이 자리에서 위안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일본 학생들도 많았다”며 “이러한 사실을 교과서에 넣어 다음 세대까지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학년 이토 군은 “위안부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지만 오늘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됐다”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양 학교의 학생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고민도, 서로의 생각도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록을 보고 각자가 받아들인 역사를 이야기했다는 것 자체가 이날 교류의 의미였다.
하남고 2학년 서모 양은 “한국과 일본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는 중립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세대에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의숲고 타카하시 교사는 “진실을 알리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오늘처럼 서로 교류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첫 출발이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남고 박성기 역사교사는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과거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연대했으면 좋겠다”며 “더 나은 미래와 평화를 만들어가는 주역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두 학교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남고에 따르면 양교 교사들의 교류는 1995년 광복 50주년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계기로 시작됐다.
교사들만의 만남을 학생들에게까지 확대하자는 뜻이 모이면서 1997년부터 학생 교류가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장소가 경복궁과 광주시 나눔의집이다.
양교는 매년 교류 때마다 학생들과 이곳을 찾는다.
[ 경기신문 = 나규항·장진우 기자·김해일 수습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