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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주의 라이프 in] 사투리는 ‘낙인’ 되고 비속어는 ‘밈’이 되고…장소원이 바라본 ‘우리말’

장소원 前 국립국어원장, 해외한국어교육지원센터장으로 새출발
우리말의 빠른 변화 막을 수 없어…있는 그대로 바라봐 줘야 해
진정한 문해력은 긴 글을 읽고 흐름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장소원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약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뒤 2002년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 10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국립국어원장을 지냈으며, 올해 8월 서울대 국억국문학과 교수 정년을 맞았다. 조교 경력까지 더하면 연구와 교육에 몸담은 시간은 35년 5개월에 이른다. (약력)

 

최근 인기 아이돌의 “무섭노”라는 정겨운 고향 말 한마디는 정치적 낙인이 됐고, 거친 욕설을 비튼 “샤갈”은 가볍게 웃고 넘기는 유행어가 됐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말이지만 하나는 갈등의 대상이 되고, 다른 하나는 놀이처럼 온라인을 떠돈다.

 

이제 말은 사전 속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짧은 영상과 댓글을 타고 번지며 맥락을 바꾸고, 때로는 한 사람의 정체성과 생각까지 단정하는 기준이 된다. 인공지능(AI)은 사람보다 빠르게 문장을 만들고, 오늘날의 사회는 단어 몇 개의 뜻을 아는지를 두고 ‘문해력 위기’를 말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밈과 신조어가 쏟아지는 시대, 언어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진화일까 아니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새로운 장벽일까.

 

이에 이번 ‘라이프 in’에서는 40여 년간 우리말을 연구하고 발전에 앞장섰던 장소원 前 국립국어원장을 만나 빠르게 변화하는 언어의 오늘과 그 안에 담긴 세대·지역·사회의 표정을 들여다봤다.

 

지난주 찾은 북촌의 한 거리. 언덕길을 오르니 한켠에 위치한 ‘해외한국어교육지원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평생 언어학 연구에 매진해 온 장 원장이 반갑게 맞았다. 20여 년간 헌신했던 서울대 국어국문학 교수에서 이달 정년 퇴임한 그는 센터장으로서 교육과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소설가를 꿈꾸던 학생, 문법의 세계에 빠지다

 

장 센터장은 처음부터 국어학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그의 꿈은 소설가에 가까웠고,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면 소설을 쓰는 법을 배우고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당시 교내 교육 과정에는 창작 실습 과목이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학이론과 문학사에 대한 흥미도 떨어져 갔다. 그러던 중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의 ‘문법론’ 수업이었다. 말 속에 숨어 있는 원리와 규칙을 하나씩 발견하는 과정은 문학 수업과 다른 즐거움을 줬다.

 

“문법론 수업은 무척 재미있었어요. 언어가 움직이는 원리를 살펴보고 그 체계를 찾아가는 과정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이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어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강의실에서 품은 의문, 국립국어원으로 이어지다

 

본격적으로 국어학자의 길을 들어선 그가 국립국어원으로 향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대학 논술시험이었다. 논술 출제와 채점에 참여하면서 평가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현실을 마주했다. 학교 차원의 논술 평가 지표를 만들고자 했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이라면 국가 예산을 바탕으로 모든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 수 있었다.

 

국립국어원장으로 재직 당시 그는 논술 평가 지표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추진했다. 목표는 우선 사람이 일관된 기준으로 글을 평가할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장기적으로는 AI를 활용한 논술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언어정책에도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사업은 국가 차원의 한국어 어원사전 편찬이다.

 

“프랑스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는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어원사전이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개인이 편찬한 소규모 사전은 있었지만 국가가 체계적으로 만든 어원사전은 없었습니다.”

 

◇‘샤갈’도 언어의 자연스러운 변화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욕설을 비튼 ‘샤갈’과 같은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거친 욕설을 그대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짜증이나 당혹감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종의 순화형 밈이다.

 

이를 두고 우리말이 파괴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장 센터장은 신조어와 유행어의 등장을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으로 바라봤다.

 

“막을 수 있는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신조어와 유행어는 예전에도 계속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면서 의미가 굳어지면 사전에 들어가기도 하고, 잠시 유행하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방언을 정치의 언어로 이용하지 말아야”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거제 소녀 리센느 멤버 원이는 고향 말투로 “무섭노”라고 했다가 ‘일베식 표현’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역에서 사용해 온 방언이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언어로 해석되면서 정치권까지 논쟁에 가세했다.

 

장 센터장은 방언을 정치적인 잣대로 해석하고 이용한 것이 문제의 본질임을 짚었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조직폭력배가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특정 지역의 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수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방언을 그 지역의 특색과 역사, 정체성을 담은 소중한 언어 자산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표준어는 필요하다. 그러나 표준어가 지역 방언보다 우월한 말이거나, 방언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역이나 세대에 따라 방언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어색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말 하나로 화자의 정치적 성향까지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죠. 언어를 특정한 잣대에 끼워 맞추기보다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금일’의 뜻을 아는 것이 문해력의 전부는 아니다

 

오늘날 벌어지는 문해력 논쟁에 대해서도 장 센터장은 단어 몇 개의 뜻을 아느냐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금일’이 ‘오늘’이라는 사실을 아느냐만으로 문해력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짧은 문장이나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문해력의 일부일 뿐입니다. 진정한 문해력은 긴 글을 읽고 내용의 관계와 흐름을 파악해 자기 것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니까요.”

 

대학 강단에서는 물러났지만 그의 언어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어 교재를 만들고 해외 초·중등 학생과 재외동포 자녀를 위한 한국어 교육정책을 고민하며, 우리말이 세계와 만나는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다.

 

사투리 한마디가 정치적 낙인이 되고, 비속어를 비튼 말이 유쾌한 밈으로 소비되는 시대다.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문장을 만들고 짧은 영상과 댓글이 긴 글을 밀어내고 있다. 그러나 장 센터장이 경계하는 것은 새로운 말이나 기술의 등장이 아니다. 언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는 일이다.

 

“조금만 복잡한 생각을 해도 결국 언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도 말과 글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자신의 언어를 소중하게 여기고 좋은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언어를 바꾸지만, 언어도 사람을 바꿉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결국 우리의 생각을 만듭니다.”

 

[ 경기신문 = 서혜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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