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류는 발전과 경제성장만을 앞세워 질주해 왔다. 그 질주가 남긴 청구서는 가혹하다. 극심한 빈부격차, 고용불안, 지역 공동체 해체,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돌봄 공백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적 팽창보다, 사람이 살아갈 삶의 터전과 자연을 회복하는 일이 더 시급해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는 시장에서 이윤을 남기는 행위에 국한돼 있다. 여기에 중대한 착시가 서려 있다. 시장과 경제를 동의어로 보는 오판이다. 시장 기반의 교환이 경제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사회는 인간 공동체가 아닌 ‘시장사회’로 전락한다. 본래 경제는 인간의 삶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돼 사회 전체가 시장의 원리에 맞춰 춤추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경제란 돈을 버는 기술이기 전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를 지탱하는 경제의 통합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시장적 ‘교환’,모아서 나누는 ‘재분배’, 서로 돕는 ‘호혜’를 꼽았다.
만약 경제를 오직 시장과 개인의 이익으로만 설명하려 든다면, 이는 인류 역사상 매우 예외적이고 기형적인 순간을 보편이라 우기는 꼴이다. 이 예외적 기형성을 바로잡고 국가(재분배)와 시장(교환), 시민사회(호혜)가 함께 사회적 필요를 해결하는 방식이 바로 ‘사회연대경제’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사회혁신기업 등이 그 주역이다.
예를 들어 지역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육아 돌봄 사업을 한다면, 이용자가 내는 비용은 ‘교환’이 되고, 정부의 지원(비화폐 포함)은 ‘재분배’가 되며, 조합원과 이용자가 맺는 연대는 ‘호혜’가 된다. 특히 이들 조직은 이윤이 발생하면 독점하지 않고 지역사회나 소외계층을 위해 재투자한다.
2026년 8월 20일, 오랜 시간 표류하던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시행을 앞둔 지금, 이번 제정은 우리 사회의 매우 중대한 전환점이다. IMF 이후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의 재기를 도왔던 자활조직에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로 뛴 현장 활동가들과, 이들을 지원하며 국회에 입성한 목소리들이 함께 만들어 낸 값진 결실이다.
이번 법 제정으로 여러 부처에 분절돼 있던 지원법들이 실질적으로 행정안전부 산하로 모여 종합적인 연계가 가능해졌다. 특히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자금난을 겪던 현장 조직들에게 ‘사회연대금융제도’에 대한 법적 토대가 마련돼 자립적 생태계구축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이제 사회연대경제는 시장을 포함해 국가와 시민사회를 포괄하는 당당한 경제의 한 축이자 주체로 법적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는 이윤과 효율 중심이 아닌,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 안에서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가 제도화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에서 이탈해 폭주하던 경제를 다시 사람과 공동체 속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삶과 경제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거대하고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서로의 삶에 필요한 만큼 건네는 작은 가치, 작지만 지금 내 곁에서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노르웨이의 시인 올라브 하우게는 그의 시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갈증에 커다란 호수를 주지 마세요, 빛을 원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 ......
이웃의 손을 잡는 이슬 한 모금 같은 작은 연대들이 모여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완성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