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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고난이 빚어낸 ‘추사체’와 김정희의 삶

 

며칠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 특별전을 관람했다. 추사의 편지와 글씨, 그림을 마주하면서 작품 못지않게 마음에 남은 것은 그가 평생 사람들과 나눈 교류의 흔적이었다. 추사는 벗과 제자, 학자와 승려, 문인과 예술가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의 학문과 예술세계를 끊임없이 넓혀갔다.

 

김정희는 명문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 관직에 나아갔다. 연경에 다녀오면서 옹방강·완원 등 청나라 석학들과 교유했고, 금석학과 고증학을 비롯한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였다. 전서와 예서 등 고대 서체를 깊이 연구하며 서예의 기반을 다졌고, 높은 벼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55세가 되던 1840년 정치적 사건으로 제주에 유배되면서 삶은 크게 달라졌다. 제주에서 8년여의 유배생활을 한 뒤 북청 유배를 거쳐 과천에서 말년을 보냈다. 한때 높은 관직에 있던 대학자가 외딴 유배지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추사체는 제주 유배지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글씨가 아니다. 평생 쌓아온 금석학과 고증학, 전서와 예서에 대한 깊은 탐구와 수련이 바탕이었다. 정치와 세속에서 멀어진 그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학문과 서예에 더욱 몰두했다. 유배 전의 정제되고 윤택했던 글씨는 점차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강건하면서도 파격적인 필획으로 변해갔다. 우리가 오늘날 ‘추사체’라고 부르는 독창적인 서체가 이 시기에 무르익은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1844년 제주 유배 중 제작한 '세한도(歲寒圖)'다.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가 담담하게 서 있는 그림에는 유배객의 고독과 인간에 대한 신의(信義)가 배어 있다. 어려운 처지의 자신에게 변함없이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보낸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림과 글씨가 어우러져 하나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세한도'는 추사 예술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곁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유, 역관 이상적을 비롯한 중인 출신 지식인들과의 만남, 초의선사와 같은 승려들과의 깊은 교분, 그리고 여러 문인·예술가들과의 교류는 그의 학문과 예술을 풍요롭게 했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글씨와 그림은 하나이다’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추사에게 붓은 단순히 글자를 쓰는 도구가 아니었다. 붓끝에는 평생의 학문과 벗들과의 우정, 정치적 좌절과 유배의 고독, 그리고 그것을 견뎌낸 한 인간의 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번 전시를 보며 예술은 삶의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젊은 날의 학문과 수련, 중년의 금석학적 탐구, 제주 유배의 고독과 성찰, 그리고 말년의 자유로운 필묵이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세계로 승화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풍파를 만난다. 중요한 것은 그 풍파를 어떻게 견디고 무엇으로 바꾸어내느냐일 것이다. 김정희는 고난을 원망과 좌절로만 남겨두지 않고 학문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우리에게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보배인 ‘추사체’를 남겨준 데 대하여 무한한 존경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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