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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쌤’과 ‘프로’를 권하는 교육기관

 

 

 

사리를 분별함에 있어 설명이나 증명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만큼 명백할 경우를 두고 ‘자명하다’라고 한다. 스스로, 저절로 자(自)와 밝을 명(明)이니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익히 알고 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을 두고 쓰는 용어다. 때문에 어떤 계획을 수립하거나 무엇을 평가할 때 자명하지 못한 문제를 두고 토론과 논쟁이 뒤따르며, 다수가 긍정하도록 조정한다. 따라서 국가의 주요정책 또는 사회의 풍속과 규범에 영향을 끼치는 개선책들은 모두에게 자명하도록 신중하며 철저해야 한다.

최근 교육행정의 수뇌기관인 서울시교육청은 교육현장에서 권위주의를 없애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이루겠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구 중에 기사를 읽는 필자의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자명(自明)하지 못한 안건이 있었다. 그것은 수평적 조직을 위해 수평적 호칭부터 부르자는 것으로, 앞으로 선생님 대신 ‘쌤’, ‘님’ 또는 ‘프로’와 같은 별칭을 쓰자는 것이다. 이 안건을 접하고 처음엔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 충격이었으나 많은 생각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었다.

학교현장에서는 선생님 대신에 ‘쌤’이라는 은어가 이미 확산되어 즐겨 쓴다. 하지만 교육행정기관에서 표준어 사용을 권장하기는커녕, 프로와 쌤의 호칭으로 교내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로 개선하겠다는 발상은 한국교육사에서 조롱거리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일제강점기 이후로 우리는 왜곡된 역사와 붕괴되고 단절된 고유의 전통을 되찾지도 못한 채, 지금까지 외래제도와 문화들로 범벅되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계승자답지 못한 가치관에 빠져있다. 그간에 이루지 못한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과 제도를 찾고 밝히어 전승하게하고, 오늘날 혼재된 외래의 문물을 융화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과제다.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호칭안건은 이에 반하여 역행하는 계획이며, 우리의 전통가치와 질서를 해체하게 될 아이들 불장난과 같았다.

또 한편으로, 이토록 자명하지 못한 안건이 발표되기까지는 교육청 내부의 수직적 권위주의가 정작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쌤, 프로 등의 호칭안건이 발표될 때까지 그 누구도 권위적 존재에 거슬리는 직언과 비판이 없었다는 방증(傍證)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한 노력은 우리의 선조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진중하며 치열했던 듯하다. 일례로, 조선시대 진주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 사건이 벌어진 것을 두고 세종대왕은 자신이 부덕하여 일어난 일이라며 탄식했다 한다. 그 대책으로 여러 대신들과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고, 사회질서를 위한 예법과 미풍양속의 지침안내서를 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고서 4년 동안 효자, 충신, 열녀 등의 모범인물 330명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발간한 책이 바로 ‘삼강행실도’이다. 세종 이후에도 보급의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성종 때에는 한자를 한글로 풀이하고, 중종 시대 김안국은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이륜행실도’를 편찬했고, 정조 때에 이르러 ‘이륜행실도’에 ‘삼강행실도’를 첨부해 ‘오륜행실도’를 간행하기까지 한다.

또한 조선은 최고지도자라도 자명한 이치를 함부로 거스르지 못하는 사회였다.

어쩌면 세계의 모든 왕들 중에서 조선의 왕 만큼 불편한 자리는 없었을 것 같다. 사관(史官)이 왕의 모든 행적을 기록하므로 자신의 언행이 곧 역사가 되니 그 두려움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임금에게 간언(諫言)하는 전문직을 두어 그의 어떤 발언에도 죄를 묻지 않도록 제도화(대간불가죄·臺諫不可罪)할 정도니 “아니 되옵니다 전하”를 귀 따갑게 들으며 정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성군인 세종대왕 조차도 형조참판 고약해(高若海)의 간언에 오죽이나 시달렸으면, ‘고약해 같은 놈’이라 했으며 ‘고약한 놈’의 어원이 되게까지 했을까.

조선이 500년간이나 유지된 것은 그냥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지도자들이 방종할 수 없도록 언로(言路)가 열려 있었으며, 목숨 건 사명감으로 직언하는 인물들에 의해 이끌어진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쌤?’ 깊이 자각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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